2015년 4월 16일 오늘의 아침편지 출력하기 글자확대
엄마의 등, 엄마의 파마머리, 엄마의 주름 나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지만
때를 밀어주는 엄마의 등은 변함이 없다.
나는 머리 모양을 매일 바꾸지만
그 독한 냄새의 파마머리는 변함이 없다.
나는 짜증이나 낼 때야 주름이 보이지만
엄마의 이마에는 매일 하나씩
주름이 늘어난다.


- 정지아의《사월의 편지》중에서 -


* 단원고 2학년이던
고(故) 정지아 학생이 생전에 남긴 글입니다.
아마도 지난 1년 엄마는 송두리째 변했을 것입니다.
엄마의 등은 더 굽어져 오그라붙었을 듯하고,
엄마의 파마머리는 완전히 풀어졌을 듯하고,
엄마의 주름은 더 많아져 셀 수조차 없을
듯합니다. 마음에 쌓인 새까만 숯검정은
이미 석탄처럼 변했을 것입니다.
"어머니... 힘내세요."
- 오늘 세월호 1주기 -
  '멈춰버린 대한민국 시계, 그후 1년'

서울문화재단 간행물 문화+서울 4월호

아래 글은
서울문화재단 발행 정기간행물인「문화+서울」에 쓴
'멈춰버린 대한민국 시계, 그후 1년'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깊은산속 옹달샘에 '은둔'해온
지난 10년 동안 아침편지와 저서 집필 외에
'언론칼럼' 등 외부원고는 일체 쓰지 않고 지내왔는데,
이번 글의 청탁을 받고는 차마 거절하기가 어려워
참으로 오랜 만에 쓴 '외부원고'입니다.

아래에 원문 그대로 올려 드리니
시간이 되시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멈춰버린 대한민국 시계, 그후 1년' -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8분.
대한민국의 시계가 한순간에 멈춰섰다.
한 나라의 근간이 되는 신뢰의 시계, 사회적 국가적 시스템의 시계.
그리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멈춰선 신뢰의 시계, 시스템의 시계는 이제 잘 작동되고 있는가.
가장 정밀해야 할 분침, 초침은 제대로 고쳐졌는가.
돌아보면 지금도 가슴이 아리고 슬퍼진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
이제는 그 아픔에서 일어나 새로운 각오와 다짐이 필요한 시점이다.
씻기지 않는 아픔과 상처의 자리가 마냥 절망으로 굴러떨어지는
추락의 변곡점이 아니라, 깊은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한
신뢰 회복의 디딤돌이 되어야 하고, 그 디딤돌이
더 큰 희망과 도약의 발판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 글을 쓰는 나를 비롯한 전 국민 모두가
세월호 사건이 각자의 삶에 어떤 파문과 파장을 일으켰는지
찬찬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014년 4월16일, 나는 당시 중국 출장 중이었다.
무섭게 발전하는 중국을 주마간산이나마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서,
그 중국 틈바구니에 낀 우리 민족은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를 생각하며
영감을 얻기 위해서 중국 대련을 거쳐 단동에 들어가, 이제는 '관광 명소'가
되어버린 '끊어진 압록강 철교'를 돌아보고 막 차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동행했던 스텝 한 사람이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한국에 큰 사고가 났다"는
비보를 전했다. 수학여행 학생들이 탄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방금 다녀온 압록강 철교가
다시 폭탄에 부서지는 듯한 파열음이 나의 심장을 때렸다. 그러나
곧 다른 스탭이 다시 한 번 기사를 훑어보더니
"전원구조 되었답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난 아직도 그 날의 그 '전원구조'라는
4글자의 오보가 가슴에 아리게 박혀 있다.
'전원구조'라는 그 4글자가 '오보'가 아닌 '사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돌이켜볼수록 분통이 터지고 분노가 치솟는
그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그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발을 붙일 수 없도록
우리 사회 신뢰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급히 귀국한 나는 4.16 그날 이후,
지난 1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같이 써오던
'고도원의 아침편지' 맨 아래에 올린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중단했다. 세상이 온통 슬픔과 비탄으로 가득한데
어떻게 '오늘도 많이 웃으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노랗고 파랗고 초록의 산뜻했던
아침편지의 '물주는 아이' 로고도 검은색으로
옷을 갈아입혔다. 그리고 노란 리본을 달아주었다.
웃음 대신 슬픔을 삼키며.

'아침편지'도 제목부터가 달라졌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아요',
'기적을 믿으며...',
'하늘이 도우사',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
'우린 이제야 비로소',
'숯검정',
'가장 사랑하는 순간',
'우리가 잊어버린 것',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매일같이 팽목항의 유가족들과 실종자,
생존자들, 생존자 가족들, 더불어 함께 아파하는 국민들을 향한
위로의 치유의 메시지를 담았고, 그것만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몸짓이었다.

안타까운 일이 또 있었다.
작년 3월1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는
'아침편지 문화재단'이 진행하는 행사가 있었다. 이름하여
'힐링허그 사감포옹'이라는 플래시몹 행사였다. 아침편지를 받는
독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간단한 '거리 음악'을 감상한 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춤을 추며
포옹을 나누는 행사였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반기고 좋아해서
한 달 뒤인 4월5일 식목일에 다시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모여
두 번째 '힐링허그 사감포옹' 행사를 마쳤고, 다음 5월5일
어린이날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 사이 4월16일에 세월호 사건이 터진 것이다.
당연히 5월5일 행사는 취소되었다.

'오늘도 많이 웃으시라'는 인사말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는 춤과 포옹도,
멈춰 선 시계와 더불어 함께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지?"
답이 없었다.

답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따금 지치고 힘들 때마다 혼자만이 찾아 무릎꿇던
나의 '기도의 방'에 올라가는 횟수가 많아졌고,
그 시간도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생존자 가족들의 대국민 호소문'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 호소문을 눈물로 읽어가다 마침내 나는 답을 얻었다.
그리고 바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써내려 갔다.
그 글은 다음날 아침편지 '밑글'로 올려졌다.

2014년 4월23일자 아침편지의 다음과 같은 밑글이었다.

- '단원고 희생자 학부모들의 대국민 호소문을 읽고 -  

호소문을 눈물로 읽다 마지막 대목이 가슴에 못처럼 박혔습니다.
"생존 아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보살핌을 위해서도 정부와
모든 각계 각층, 전 시민사회가 애써주길 바랍니다."

어느 한 사람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참 아픕니다.
저 역시도 밤잠 못 자며 매일 아침 어떤 아침편지로 위로를
전하고 희망을 전달하며 힘이 되어드릴지 숙고하고 기도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아침편지를 시작한 이래 이처럼
고민하며 하루하루 아침편지를 썼던 적이
과연 있었는가 돌아보며 말입니다.

국가적 재난 상황, 가슴은 더욱 비통해지고,
할 말은 많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해야겠기에
오늘 생존자 부모님들의 '대국민 호소문'을 읽으며
마지막 문장에 번쩍 정신을 차려,
저도 힘을 보태야겠다
결단을 내려봅니다.

그동안 옹달샘에서는
여러 형태의 '트라우마 치유명상'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특히 '다문화 가정'의 부모와 아이들, 북한 탈주민들, 인터넷 중독학생,
도박 중독자와 가족들, '장기 실종 아동' 가족과 부모들을 대상으로
‘치유와 회복'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많은 분들이 본인 스스로도
놀라워할 정도의 회복력을 보이며 희망의 빛을 안고
새 기운을 얻어 귀가하셨습니다.

그 특별한 경험을 살려
이번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깊이 숙고해 보았습니다.
단원고 학생, 학부모, 선생님들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 옹달샘에서
편안한 휴식과 치유의 시간을 가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여 모셔드리고 싶습니다.

우선적으로 가장 시급한
생존 학생들과 학부모님, 선생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저와 아침지기들이 이곳 옹달샘에서
마음을 모아, '단원고 생존자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을 위한
힐링캠프'를 최대한 준비해 무료로 초대하겠습니다. 지금 너무나
절실하게 육체적 안정과 마음의 안식이 필요한 때,
옹달샘이 '치유의 안식처'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어,
아직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기적을 기다리고 계신
실종자 가족분들과 사망 소식을 접해 가눌 수 없는 상실과 슬픔에
잠겨있는 가족분들께도 힘이 되어드릴 수 있는 길을 최선을 다해
찾아보겠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위로하며 힘을 모아
나눠야 할 때, 저희의 작은 결단이 '세월호의 아픔'에
작은 치유의 힘, 희망의 빛을 띄우는 발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350만 아침편지 가족 여러분도
마음으로 함께 해주십시오.

사랑합니다. 위로합니다. - 2014년 4월23일 밑글 전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변치 않는 마음을 담고 있는
이 글을 보낸 1년 뒤인 오늘 내 책상 한 켠에 1년 전 4월에
남겨졌던 쓰라린 아픔을 치유해주는 따뜻한
선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작년 말, 단원고 학생들을 위한 '힐링캠프'가
깊은산속옹달샘에서 진행되었다. 단원고 학생 전교생이
5차례에 걸쳐 옹달샘에 초대되어 2박3일 동안 힐링의 시간을 가졌고,
단원고 선생님들, 학부모, 지역주민들도  옹달샘을 치유의 장소로
찾아주었다. 서로가 부둥켜 함께 울고, 웃고, 춤추고, 꿈꾸며 보낸
치유의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공유하게 되었다.
그 시간이 너무도 큰 위로를 안겨 주었고,
잃었던 웃음을 찾아주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날,
나와 아침지기들에게 보낸 편지가 왔다.
옹달샘을 다녀간 단원고 학생들 모두가 써준 귀한 손편지였다.
'다시 보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꿈과 희망이 생겼습니다'.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학생들의
치유의 메시지가 나를 울렸다. 마음의 난로처럼
뜨겁게 내 가슴을 덥혀주고 있는 것이다.

'운디드 힐러'.
'상처입은 치유자'를 말한다.
우리 모두는 어찌보면 1년 전 4월, 모두가 함께 '상처'를 입었다.
너무나 아픈... 그 상처를 상처로만, 아픈 기억으로만 남겨놓을 것인가!
아니면 그 상처를 이겨내고 승화시켜 새로운 믿음과 희망의 사다리로
만들 것인가. 나를 비롯한 전 국민 모두가 각자 자기 자리에서 깊이
성찰하고 지혜를 구해야 할 시간이 아닐까 싶다.

그 성찰과 지혜가 모여 하나가 되고 집단화될 때,
우리의 멈춰선 시계는 더 정밀한 초침,
분침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한 마디 더 첨언하자면
이런 때일수록 더 사랑해야 한다고,
더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더 힘을 내어
서로가 서로를 '상처입은 치유자'들로 바라보며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외치고 싶다. 나도 아프지만, 너는
더 아프고, 우리 모두 다 아프다는 사실에 공감하며,
어렵지만 다시금 힘을 내어 함께 일어서자.
희생된 영혼들이 먼발치서 기뻐할
좋은 사회, 좋은 나라를 만들자.

깊은 마음의 위로를 전하며...

고도원(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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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오늘(16일) 오후 5시55분
KBS 1TV에서 방영되는 '세월호 1주년 특집 생방송'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기억'에 출연하여
그동안 마음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조금 풀어놓을 예정입니다.

시간이 되시거든 시청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위로합니다.

아침편지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 오늘 아침편지 배경 음악은...
피아니스트 메이세컨의 'With m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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