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 쓰는 남자 -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 고도원

1998년 6월 17일 SBS 라디오 방송국에 7백 통이 넘는 팩스와 편지가 쏟아졌다. 1년 반 동안 '이숙영의 파워 FM'에서 조간 브리핑을 진행하던 한 신문 기자의 고별방송이 끝난 뒤의 일이다. 무엇보다 청취자들은 그가 방송 끝에 읽어주던 좋은 글귀들을 더 이상 녹음하지도 받아 적지도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4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개인 홈페이지(www.godowon.com)에는 '고도원 기자의 오늘의 어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낯선 방송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돌덩이 두 개를 입에 물고 발음을 연습하던 그가 이번엔 쉰이 넘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고도원의 아침편지>란 이름으로 이 메일을 보낸다. 그의 어록『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에서처럼 사랑, 절제, 자족, 고통을 이기는 법 등 삶의 철학이 담긴 글귀들을 담아서. 신문 기자에서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자리는 옮겼지만 그의 어록은 여전히 소리 없는 의식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 '아침편지'는 많은 기적을 낳고 있습니다"라는 한 수신자의 말은 그에게 최고의 찬사다.

청와대에서 온 '마음의 비타민'

자칭 이조사(이주일과 조영남 사이)는 헛말이었다. 악수를 건네며 반기는 모습에 탤런트 길용우의 얼굴이 스친다. 아침 세수를 하다가 거울 앞에서, 자동차에 올라타 백미러를 돌려가며 미소짓는 연습을 해서일까? 웃을 때 보이는 눈가 주름이 청와대로 가는 길, 몇 차례 검문에 졸였던 풋내기 기자의 마음을 녹인다.

대통령 비서실 102호, 그의 방에는 동서양 고전부터 최근 베스트셀러까지 시공을 초월한 책들이 조용히 숨쉬고 있다. 온전한 책은 없다. 군데군데 줄이 쳐져 있고 포스트잇이 여럿 붙어있다. 함석헌 선생의『뜻으로 본 한국역사』초판본은 보기만 해도 곰팡내가 난다. 시골 교회 목사였던 아버지의 "부드러운 것만 먹으면 이 상한다. 딱딱한 것도 씹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 따라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열두 살에 읽었던 책이다.

"책 속에 있는 감동의 한 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바꿉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제가 책에 밑줄 그은 대목을 '마음의 비타민' 삼아 함께 나누면서 매일 아침을 보다 밝고 행복하게 열고자 하는 뜻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작년 8월 1일에 돛을 단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면서 불과 6개월만에 6만 명이 넘는 대식구를 이뤘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릴레이식 추천을 통해 편지는 초등학생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 제주도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나이와 계층, 지역을 뛰어넘는다. '아침편지'를 혼자 보긴 아깝다며 2천여 명의 고등학교 동창회 5회분 명단을 보내오는 사람도 있다. 수 백, 수 천명의 그룹 명단을 받아든 고도원씨는 새 식구들의 이 메일 주소를 하나하나 입력하는 일도 즐겁기만 하다.

첫 운항이 순조롭진 않았다. 비난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의도가 뭐냐고 물어왔다. 책 광고인지, 대통령에 출마하려는 것은 아닌지, 정치적 음모는 아닌지. 그의 옛 언론 동료 한 명은 "쓸데없는 짓 해서 욕먹지 말고 메일 발송을 중단하라"고 진지하게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편견과 사시(斜視)보다 격려와 감사의 말이 훨씬 많았다. 자살까지 생각하던 사람이 그의 편지로 삶을 다시 보게 됐다는 사연, '아침편지'를 받으면서 자녀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낀다는 학부모의 메일 등은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웃지 않을 수 없는 일화도 있다. 학교가 마음에 안 들어 휴학을 하고 PC방에서 빈둥거리던 한 대학생이 장난 삼아 검색어에 '고도리'를 쳐 넣었다. 우연히 고도원씨 홈페이지에 들어간 그는 별 생각 없이 가입을 하고 '아침편지'를 받게 되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 그 학생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30분만에 메일 발송을 끝낼 수 있었지만 수신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한 때는 6시간씩 걸리기도 했다. 서버 용량 과부하로 메일 발송에 문제가 생기면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있냐", "재정 문제 때문이냐"며 홈페이지에 한바탕 난리가 난다. "이런 놀라운 반응들이 제가 '아침편지'를 평생 봉사, 평생 취미, 평생 직업으로 삼게 하는 힘입니다."
여러 언론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지만 그는 가능한 정중히 사양하고 있다. "이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매스컴에 요란하게 등장하는 것은 진심으로 원치 않습니다. '아침편지'는 누구나 찾아와서 그 상큼하고 청량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깊은 산 속 옹달샘'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의 옹달샘은 고여있지 않다. 독자 참여 공간 확대를 위한 <독자가 쓰는 아침편지> 코너 신설, 영어·일어·중국어 버전 <극동에서 보낸 아침편지> 계획, '비즈니스 모델' 부문 국내특허 등록에 이은 세계특허 출원 등이 그의 샘을 마르지 않게 한다. "가끔 혼자서 <고도원의 아침편지>라고 쓴 비행선이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의 날개 달린 상상력이 어디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돈을 낙엽처럼 태우는 도둑?

그가 편지에 동봉하는 그만의 정제된 언어와 간단한 부연 설명은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다.

희망은 오직 하나뿐인 자기 안에 있으며, 희망을 잃는 것은 그 하나뿐인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죄(罪)를 짓는 것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中-

짧지만 울림이 있는 표현에 사람들은 무릎을 치며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아느냐", "오늘 아침 내 고민의 해답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그의 오랜 후배인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의 임희경 기획위원은 "고 선배는 한국 남성이 가지기 정말 힘든 감성을 가졌다"며 그를 '언니 같은 오빠'라고 칭한다.

연세대 '연세춘추' 편집국장, '뿌리깊은 나무' 기자, '중앙일보' 정치전문 기자, '월간 중앙 WIN' 차장, KBS·SBS 등에서 시사평론가로 신문 기자와 방송 생활만 20년 넘게 했다. 그리고 1998년부터 대통령 비서실 국내언론총괄국장을 거쳐 현재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1급)까지. 하지만 그의 화려한 이력 뒤에는 오래 엎드려 있어야 했던 시절이 있다. 유신 시대에 학생운동 배후조정 혐의로 구치소 생활을 했고 군대에 가야했다. 10년만에 겨우 졸업을 했지만 제적생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한때 아현동 고갯길에서 빵떡 모자를 쓰고 웨딩드레스를 만들기도 했다. "선배 모파상에서 두 달 정도 일할 때 무엇이 진정 나를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지 알았습니다. 활자가 너무 그리워서 인쇄공이라도 되고 싶더군요." 고도원씨 삶에 녹아든 그 고통의 시간들이 엄청난 독서와 더불어 그를 많은 이들의 '마음을 훔치는 도둑'으로 단련시키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돈에 무관심한 도둑이다.

"돈이 좀 들긴 하지만 상식적인 수준입니다." 초창기 시스템을 구축하고 홈페이지 디자인을 하면서 목돈이 들 때는 중고차 한 대 사는 셈 쳤다. 서너 달에 한번 새로운 기능을 보완·도입하고 서버 용량을 늘리면서 큰돈이 들 때도 십일조를 한번 더 낸다는 마음이었다. 이에 비하면 매달 몇 백 만원씩 드는 메일 발송비용과 책값은 고정비용일 뿐이다.

"제가 5년 넘게 기자로 일했던 '뿌리깊은 나무'의 고(故) 한창기 사장님은 창간 초에 엄청난 재정 적자가 나서 주위 사람들이 걱정하자 '자기가 꿈꿔온 의미 있는 일이라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꿈같은 일'을 찾아냈고 그 '의미 있는 일'에 태울 수 있는 낙엽이 얼마쯤은 있는 현실에 더없이 감사합니다."  

낙엽에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홈페이지에 흔한 배너광고 하나 띄우지 않는 것은 그 누구로부터도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다. 유료화나 벤처화에 대한 제의도 영어·일어·중국어 버전이 나올 때까지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고마움을 표시하며 돈을 보내주겠다는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돈 말고 두 가지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많이 추천해 주시고 의견 있을 때마다 저에게 메일 보내주세요. 그것이 최고, 최선의 보답입니다." 옳은 일을 하면 돈은 하느님이 주신다고 말하는 그, 마치 흥부 같다.

그는 달린다

잡곡밥을 상추에 싸고 쌈장을 푹 찍어 넣는다. "국 참 시원하다"며 된장국을 뜨는 모습에서 유년 시절 17번이나 이사를 하며 산으로, 바다로 뛰어 다니던 소년의 소박함이 묻어난다. 후식으로 나온 바나나를 건네며 말한다. "바나나는 마라톤 끝나고 먹어야 제 맛인데"

그는 2년 전부터 청마동(청와대 마라톤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다. 국내의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일은 그의 월례행사다. 아침 7시 반에 출근해서 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바쁜 일상이지만 하루 한 시간 정도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 "내 나이 일흔에 보스턴 마라톤 대회 나가는 게 꿈입니다." 지난번 생일에 딸 새나씨가 선물한 쫄티 자랑에 잠시 열을 올린다.

마라톤을 '단순한 달리기가 아니라 육체와 정신, 나아가 영혼까지 치료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말하는 그는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마라톤에 비유한다. "세상의 모든 도서관과 책방이 문닫지 않는 한, 가능하다면 죽기 전까지 계속할 생각입니다." 이따금 그의 아내와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나 그만의 독특한 유머를 편지에 곁들이는 것은 함께 달리는 이들에게 먼길 가는 피곤함을 달래는 '박하사탕'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는 하루에 '아침편지' 식구들로부터 많게는 3000여 통의 이 메일을 받는다. 수 십장씩 프린트를 해서라도 반드시 읽는다. 그네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급할 건 없습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고 수가 많아도 마음과 마음이 닿는 큰 식구가 되고 싶습니다." 천천히 가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멈추는 것이 두려운 그이다.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인 고도원씨에게 최근 관심사는 '모두 다'이다. 세상을 끌어안고 있어야 할 자리에서 머릿속이 복잡할 때도 있다. '자유인'을 갈망하는 그는 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배낭에 노트북 하나 넣고 3∼4개월 정도 세계여행을 할 예정이다. 그가 동구라파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보낼 '아침편지'는 무엇을 담고 있을까? "깨끗이 씻고 돌아와서 '아침편지'에 몰두할 겁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좋은 '마음의 비타민'이 되도록 더 많이 사색하겠습니다." '처음처럼'이란 생활 신조 앞에 '언제나'란 말을 덧붙이는 나무 같은 사람, 그는 오늘도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정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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