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절망에서 솟구친 그 사람이 바로 희망"
[백인보-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④] '아침편지' 발행인 고도원
홍성식 (poet6) 기자
<오마이뉴스>가 2월 22일 8주년을 맞이했습니다. 8살배기가 된 <오마이뉴스>는 올해 여러 가지 연중기획 가운데 하나인 '백인보-희망을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독자 여러분에게 찾아갑니다. '백인보-희만사'는 작지만 소중한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들, 의미있는 도전과 실험을 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 희망의 싹을 틔우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땀방울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백인보-희만사'의 이번 주인공은 '아침편지' 발행인인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눈부신 봄, 낮잠에서 깨어나

네가 보낸 편지를 읽는다

사랑이란

자로도 저울로도 잴 수 없는

한 장의 엽서 같은 것

그 속에 담긴 보고 싶었단 한마디

그 한마디만으로도

내 뼛속 가득 차 오르는 햇살.

 

이제는 쓴 사람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하지만, 20여 년 전쯤 읽었던 한 편의 시가 던져준 감동은 여전히 기억 속에 선명하다.
 
한 장의 편지, 그 속에 담긴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웃기고 울릴 수 있다는 짧은 글귀. 그 간명한 메시지의 울림은 크고 깊었다.

 

바로 그 '편지 속 짧은 글귀'가 가진 힘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파하는 사람이 있다.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고도원(56) 이사장.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해 고초를 겪었고, 웨딩드레스 업체를 운영했으나 장사에는 재주가 없었다. 이후 <뿌리깊은나무> <중앙일보> 기자 생활을 거쳐, DJ 정권 때는 대통령비서실 연설담당비서관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드라마틱한 삶이었지만, 굴곡이 없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스스로 편안함과 만족을 찾고, 평화로운 마음에 이른 것은 자신이 읽은 책에서 찾아낸 매혹적인 문장에 자신의 짤막한 문장을 덧붙인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배달하면서부터다.

 

"좋은 문장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의 친구와 동창, 친척들 수백명을 대상으로 '아침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2001년 8월 1일. 그로부터 6년 6개월이 흐른 지금. 매일 오전 그가 발송하는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독자는 190만599명(22일 오후 3시 현재)으로 늘었다.

 

하지만, 독자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건 아니다. 고도원에게 보다 중요한 건 '아침편지'를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 사람의 친구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쓰자, 한 사람이 공감해야 대중도 공감한다, 내 진실을 열어 보여주자"라는 소박한 결심.

 

편지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며, 땀방울이고, 눈물"이라고 말하는 그를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자리 잡은 '아침편지 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편지'라는 수단을 통해 행복과 희망의 참된 의미를 사람들과 나누는 그가 웃을 때마다 편안한 잔주름이 얼굴이 덮었다. 근사해 보였다.

 

- 만나게 돼서 반갑다. 근황은?

"얼마 전 바이칼 호수에 다녀왔다. 3년 전부터 매년 '겨울의 심장을 찾아서'란 슬로건 아래 그곳으로 명상여행을 간다. 이번엔 80여 명과 일정을 함께 했다. 얼어붙은 얼음 위에서 조용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바이칼·인도·몽골·티벳 등이 나와 '아침편지' 독자들이 자주 여행하는 곳이다. 그 외에 하는 일이라면 여전히 편지 보내고, 마라톤도 하고, 책 읽고, 강연하고…."

 

- 2001년에 시작된 '아침편지' 독자가 190만 명을 넘어섰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띄운다는 건 어찌 보면 두려운 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편지를 쓸 때는 어떤 마음인지.

"소박하게 취미삼아 쓰게 된 것이 생각 밖으로 많이 커졌다. 항상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강박도 있다. 늘상 새로운 소재를 고민해야 하기에 힘겹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 덕분에 내면의 공부에 집중하게 된다. '죽을 때까지 이걸 할 수 있을까' 란 스스로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도 하고. 독자가 200만, 300만이 되어도 '한 사람의 친구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쓴다'는 '내 진실을 먼저 열어보인다'는 초심에는 변함이 없다."

 

- 애초 '아침편지'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뭔가?

"<대학신문> 편집장, 기자,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 등을 했다. 모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독서기록 파일을 가지게 됐다. 그걸 정리하다가 '좋은 문장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어 '작은 문장의 힘을 나누자'라는 결심이 섰고, 이메일 주소를 알고 있던 가족과 동료, 동창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게 오늘에 이르렀다."

 

199만이 보는 편지, "한 사람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 이렇게 가파르게 성장하다 보니 갖가지 일을 겪었을 텐데.

"독자 숫자가 수십만 명이 되면서부터 거액을 이야기하며 사업적 제의를 해오는 이들도 있었다. 유혹에 대한 고심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편지'는 공공성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만든 게 '아침편지 문화재단'이다. 여기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사업 등을 벌였고, '몽골에서 말타기' 등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고, '책 읽고 밑줄긋기 대회'도 열었다. 현재는 '아침편지' 영어판과 일어판·중국어판을 준비 중이다."

 

- 사업가, 기자, 청와대 비서관, 문화재단 이사장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어떤 게 가장 적성에 맞는지.

"글 쓰는 게 가장 즐겁다. 사실 글을 쓴다는 건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쓸 때 크나큰 행복감을 느낀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절이 있다. 내가 번민하고 갈등하던 시절, 글이 없었다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영혼의 우물'에서 오래 숙성시킨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스스로를 글을 통해 꿈을 꾸는 사람이라 말한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희망이 되는 '좋은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싶다."

 

- 실로 많은 '아침편지'를 보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독자는?

"희망에 관해 쓴 첫 편지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책에서 아버지가 그어놓은 밑줄을 보고 내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됐다. 아무도 가지 않은 '꿈의 길'을 가자고 사람들에게 권유했던 그 편지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리고 독자라…. 인천에 사는 20대 여성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삶을 끝내려 책상과 옷장·은행계좌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이메일을 정리하다가 당신의 편지를 보고 생을 포기할 수 없다란 생각을 하게 됐다'는. 그 편지는 젊은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진 내 친구(판사)를 생각하며 쓴 글이었다. '바닥에서 우뚝 서자'는 내용이었는데, 그게 그런 역할을 해줬다는 게 고맙다."

 

고도원이 보낸 첫번째 아침편지(2001년 8월 1일)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노신의 <고향> 중에서.

 

* 그렇습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피를 말리는 이 행복... 편지는 땀방울이자 눈물"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상황도 절망적이지 않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한국에서 편지를 가장 많이 쓰는 사람 중에 하나다. 편지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글쎄…. 재밌지만 어려운 질문이다. 역으로 묻자. 편지가 단순히 글의 나열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생각키에 편지란 자기의 마음이고 삶이며, 땀방울인 동시에 눈물이다. 그리고 육체의 눈이 아닌 영혼의 눈을 통해 보는 마음을 나누는 수단이 아닐까."

 

- 평소에도 친구나 가족, 선후배에게 편지를 자주 쓰는지. 그리고 쓴다면 이메일을 사용하는지, 종이와 펜을 이용해 쓰는 것인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이메일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가끔은 손으로 쓴 편지의 정겨움을 전하고자 종이편지도 보낸다. 질문에서 조금 비켜나간 이야기지만 이메일 시스템을 만든 이가 나에겐 은인이다. 이메일을 통한 대량발송 시스템이 없었다면 '아침편지'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 바이칼·티벳·몽골 등을 독자들과 여행했다고 들었다. 한국과는 많이 다른 공간인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어땠나?

"일단 우리와는 삶의 주파수가 달랐다. 그 곳 사람들이 내뿜는 기운은 그 곳의 풍광처럼 맑고 청량했다. 거기서 머물다 보면 우리들 안에 숨겨진 어둡고 부정적인 기운이 좋은 주파수로 바뀌어 가는 걸 느낀다. 경제적으론 그다지 넉넉하지 않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고 있어서인지 얼굴 표정이 다들 환하다."

 

-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떤 도시가 당신을 매혹에 빠뜨렸는지.

"조용하고 문명의 때가 덜 묻은 곳이 좋다. 자연이 주는 어떤 기운, 예를 들면 영험함 같은 것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역에선 영혼의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을 통해 신과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 삶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을 한 사람 꼽는다면.

"아버지다. 사업을 할 때도 그랬고, 기자로 살 때도, 공익성을 띤 사회봉사 활동을 진행하면서도 늘상 아버지의 눈빛과 음성을 느낀다. 사람에겐 저마다 자신의 선택에 우선하는 '씨앗'이 있기 마련이다. 내 경우 그 씨앗이 아버지다.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의 고통과 즐거움을 동시에 가르친 사람. 그를 통해 책에 대한 사랑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씨앗'의 가치가 무시당하는 요즘 세태가 걱정이다."

 

-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편지를 통해 희망을 설파해왔다. 희망이란 대체 뭘까?

"간절히 가지길 원한다면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상황도 절망적이지 않다. 누구에게나 무너지고 싶고, 사라지고 싶은 참담한 시간이 있다. 하지만, 그런 절망의 상황이 길고 깊을수록 희망을 향해 솟구치려는 의지 또한 커진다. (절망과 고통에서) 솟구치는 모든 사람을 희망이라 부르고 싶다."

 

"꿈은 행복에 이르는 징검다리"... 그 다음은?

 

- 희망과 더불어 행복도 '세상 가장 밝은 단어'라고 불린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니까. 이에 동의하는지.

"그렇다. '아침편지'도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고 있다. 행복에는 단계가 있는 것 같다. 우선은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까. 그다음은 행복을 위해 누군가의 손을 마주 잡는 것이다. 혼자만 행복해서 뭐하겠는가? 재능이 있다면 재능을, 재물이 있다면 재물을 나누는 것, 이런 나눔의 실천이 행복의 가장 높은 단계가 아닐까."

 

- 스스로는 희망과 행복 속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는가.

"꿈을 가진 사람에게 오는 고독의 시간은 있다. 그러나 이 고독조차도 희망의 조건이라고 본다. 고독과 절망, 어떤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것들을 희망의 힘으로 넘어서려 노력하는 과정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 세상엔 '희망이 없고, 행복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데.

"꿈은 미래의 자기방향을 설정해준다. 앞서 말한 것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꿈은 행복에 이르는 징검다리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그 꿈이 이뤄진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꿈 너머의 꿈'을 가지라고 어깨 토닥여주고 싶다."

2008.02.2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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