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톤 시대 >

 

 

1973년 서슬퍼런 유신시절 한 복판에 연세춘추 편집국장으로 
'십계명'을 만들어 기명칼럼을 처음 쓴 지 실로 30년만에 
연세춘추에 기명칼럼을 다시 쓰는 감회가 새롭다. 
마치 먼 길을 돌아 장거리 마라톤을 마치고 캠퍼스에 다시 돌아온 기분이다.

"사랑을 달콤하다고 표현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대가 만약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자신을 백미터 선수에 비유하지 말고 
마라톤 선수에 비유하라. 마라톤의 골인지점은 아주 멀리에 위치해 있다. 
그러므로 초반부터 사력을 다해 달리는 어리석음을 삼가라. 
그건 백미터 선수에 해당하는 제비족들이나 즐겨쓰는 수법이다."
(이외수의《사색상자》중에서)

사랑만이 마라톤에 비유할 바 아니다. 
학문도,개혁도,통일도,역사도 장거리 마라톤 경주와 같다. 
조급하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힘의 안배가 필요하다. 
참고 견딜 줄 알아야 한다.

나도 마라톤 매니아의 한 사람이다. 
어언 5~6년이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마라톤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청와대 연설담당 비서관 생활 5년이 그렇게 만들었다. 
대통령 연설문 작성 책임자로서의 과중한 무거움과 짓눌림이 
한동안 내 몸을 무너뜨렸다.

몸이 무너지니까 저녁에 잠이 안왔다. 
아침엔 진땀이 흥건했다. 살아야 했다.   
처음에는 30분 걷기부터 시작했다. 그 30분이 너무 지겨웠다. 그러나 참았다. 
다음엔 5분 달리고 55분을 걸었다. 10분 달리고 50분 걸었다. 15분 달리고 45분 걸었다.
마침내 1시간 내내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마라톤은 나에게 둘도 없는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마라톤 친구 얻기가 그렇듯, 학문의 길도 하루아침에 닦여지지 않는다. 
개혁의 길,통일의 길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우리가 함께 달려가는 이 시대의 길, 
역사의 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백미터 단거리 코스가 아니다.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  혼란의 시대인가?  
아니다. 
더 이상 순응과 침묵이 지배하지 않는 희망의 시대이다. 
녹록해진 대지 표면에 혼란처럼 보이는 거품이 조금 일고 있을 뿐이다. 

지금이 위기의 시대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위기의 소멸 시대이다. 
위기가 점차 소멸하며 내지르는 고통의 아우성이 
잠깐잠깐 우리의 고막을 놀라게 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나라의 국기를 찢고 불태우고 하는 것은 마라톤 경주자의 모습이 아니다. 
유니버시아드 대회장을 찾아 인공기를 불태우고, 어느 신문사 앞에서 
목숨건 수문장인양 가스권총으로 공포탄을 쏘아대는 모습도 
장거리 경주자의 모습이 아니다. 장거리 시대를 외면하고 
백미터 단거리에 일신의 모든 것을 거는 한낱 제비족의 모습일 뿐이다.

티벳의 고산지대 호텔에는 이런 경고문이 적혀있다고 한다.
"덥다고 문을 열어놓고 자면 얼어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문을 닫고 자면 산소부족으로 사망할 수 있습니다."

그 뜻은 간단하다. 한 쪽에 너무 치우쳐 살지 말라는 것이다. 
체력의 안배, 인내의 안배, 지혜의 안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균형을 잃고 극단으로 흐르지 말라는 뜻이다. 
시대의 마라톤, 역사의 마라톤도 장기전이고 지구전이다. 
너무 조급하거나 균형을 잃으면 어디에선가 성급한 총소리가 나기 쉽다. 
장난으로라도 총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