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말타기" 사전 답사 동행기 1

 

 

 

<말타기 연습을 마치고. 왼쪽에서 네번째(빨간 웃옷)가 이 글을 쓴 이진주님이고, 그 옆이 고도원>

 

 

 

 

 

 <제1회 책읽고 밑줄긋기 대회 수상으로 이번 여행에 동행하여 답사기까지 쓰게 된 필자의 말탄 모습>

 

 

 

                              ‘몽골에서 말타기’ 답사 동행기 (1) 

 

 

 특별한 여행이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주최한 
‘제1회 책 읽고 밑줄긋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부상으로 ‘몽골에서 말타기’의 사전답사 팀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먼저 서둘러 회사에 양해를 구한 뒤 휴가계를 내고 돌아와,
이삿짐을 꾸리느라 온 가족이 분주한 틈을 헤집으며 가방을 쌌다. 
부끄러움 반, 자랑스러움 반으로 몽골 간다고 온 동네 소문은 다 내놓고, 
정작 필요한 물품을 챙기고 책을 읽으며 여행을 준비할 만한 여유가 없어서, 
결국엔 학창시절 초치기 시험공부로 다져진 당일치기 실력을 발휘해야 했다.
 
급한 대로 평소 친밀하게 지내던 과 선배에게 연락하여 조언을 구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일원으로 몽골에 가서 몇 년간 한국어를 가르치고 
돌아온 그는, 현지에서 <몽-한 학습 소사전>까지 낸 언어 분야의 숨은 천재다. 
울란바타르와 바양고비, 테를지, 핸티아이막을 아우르는 여행 일정을 듣더니 
못내 감탄한다. 차로 이동하기에 꼭 적당한 거리 안에서 중요한 동, 서의 여행지를 
고루 배분했다는 것이다. 유용한 지도를 찾아 보내주고, 방문 장소들을 설명하고, 
이동시간이며 음식, 간단한 몽골어 인사말에 기념품 리스트까지 챙겨주는 
그이의 친절함 덕분에 한 시름을 덜었다.

출발 전날 잠깐 생각하기에도 여행용 하드 케이스 캐리어는 아무래도 버거울 것 같아 
동생이 아끼는 인라인 스케이트용 배낭을 빌렸다. 그랬더니 의외로 자리가 넉넉하다. 
몇 벌의 옷가지와 챙이 넓은 사파리 모자, 클렌징 티슈와 물티슈, 각종 세면도구와 
화장품을 넣고 비타민과 감기약 등이 들어간 구급약 꾸러미에 디지털 카메라와 충전기, 
선글라스 등속까지 넣어도 공간이 남았다. 불현듯 선배가 들려주었던 것처럼 
거친 들판 위로 뭇별들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겠다는 마음이 동하여, 
친구의 쌍안경과 침낭까지 빌리는 수선을 부렸다. 그러는 동안 머리 속은 바람과 초원, 
그리고 파란 하늘의 나라 몽골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이 글은 그리로부터 시작된 지난 5박 6일 간의 여행 기록이다. 

첫째날 (6/15(일))

6:00 기상, 세면, 아침식사.
8:00 리무진으로 공항까지 이동.
10:00 공항 도착. 고도원님 부부와 아침편지 운영진 두 사람, 여행사 관계자 두 사람, 
        대회 수상자 두 사람까지 총 여덟 명의 일행 소개. 
11:00 출국 수속 및 면세점에서 여행용 화장품 키트와 선물 구입.
12:45 비행기 출발 (12시 05분 예정, 40분 지연). 
       운이 좋게도 창가 자리를 배정 받고, 여행 일정을 주관하는 동아 트래블 
       부사장님과 동행. 
       기내 모니터로는 공교롭게도 며칠 전 DVD로 빌려본 <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이 흐르고 기내식으로 간단한 닭고기 요리를 먹음.
4:50 몽골 도착, 현지인 통역과 가이드를 소개 받고 답사 준비팀과 합류.
5:00 승합차로 바양고비까지 이동.
8:00 이동하는 과정에 일본 왕세자가 들른 식당 야외에 들러 식탁과 의자를 내어놓고 
       늦은 점심을 함.
11:00 MAT(Mongol Altai Tour) 캠프 도착. 근방에서 소문난 최고 설비를 갖추었다는 
       캠프 내 한-몽 합작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
1:30 외국인 여행자 전용 겔에서 취침.

벌써 한 달 이상 계속되는 러시아 시베리아 중부지역에서 발생한 큰 불로 하늘이 맑지 않다. 
희뿌연 하늘 밑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황토색과 초록색의 길이 계속된다. 
오지여행가 한비야의 책에서 농담 섞어 몽골 사람들의 시력은 7.0 이 넘는다더니 
과연 그럴 법한 공간이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을 부부로 만들어 주었던 영화 
<파 앤 어웨이(Far and away)>처럼 말을 타고 달리고 싶어진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대자동차의 콤비 승합차 한 대가 우리의 말이 되어 
달려주고 있다. 덜컹거리는 느낌이 흡사 말 잔등 위에서처럼 짜릿하다. 
우리들은 자동차가 심하게 요동칠 때마다 ‘츄츄’(몽골어로 ‘달려!’ 라는 뜻.) 라고 
외치며 즐거워하기로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것이 지난 시간들이 준 교훈이었으므로. 

먼지 바람이 부는 끝없는 길 위를 오징어로 달래며 긴 길을 달려간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자동차 안에서 일행들과 조금씩 말을 트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고도원님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최초의 꿈을 꾼 
주인공이다. 생각보다 훨씬 장난기가 많고 유머러스하다. 근엄한 정치가나 
꼬장꼬장한 어르신보다는 그 편이 훨씬 좋다. 

비포장 도로로 진입하고 한참을 더 가서야 요기를 할 만한 곳이 나온다. 
일본 왕세자가 방문했을 때 들렀던 곳이라는데 딱히 시설이나 음식이 눈부신 
고급이라서라기보다는 드넓은 땅에 쉴 곳이 오직 여기 하나 뿐이어서가 아닐까 
싶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주위 환경이 탁 트여 경관만으로도 한 몫을 하는데다, 
외국 손님들이라 그런지 자못 신경을 쓰는 듯한 움직임들이 나쁘지 않다. 

햇살이 들어오는 식당을 벗어나 식탁과 의자를 밖으로 나르고 그곳에 준비해 온 
점심거리를 풀었다. 옷만 안 벗었다 뿐이지 이건 완전히 한 폭의 그림이다. 
풀밭 위에서의 식사. 게다가 그곳 나름의 서비스인지 화장실을 지키고 있다가 손을 
닦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종이 수건을 내어주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다들 민망하고 
고마운 마음에 1, 2 달러 정도의 팁을 드리는 모양이었다. 

도시락을 다 먹고 나자 ‘자, 야위’(‘자, 가자’)라고 하며 자동차로 이동한다. 
몽골어는 깜짝 놀랄 정도로 우리말과 닮았다. 조사 ‘~로’ 등은 아예 똑같은 형태이고. 
보그드한 산의 경우나 칭기즈칸의 경우처럼 ‘크다’, 혹은 ‘왕’을 뜻하는 ‘칸’이나 ‘한’의 경우
우리말의 마립‘간’ 등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거기다 도처에 흔한 까마귀는 고구려
고분 벽화 속 삼족오나 솟대 위의 신성한 새의 원형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고도 하니 
아무래도 이쪽은 우리 조상들과 어떤 식으로든 깊은 관계를 맺었던 모양이다. 
고려대 사학과 출신의 한-몽 합작 사업가인 가이드 손석원 사장님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특히 우리에게 넘어온 몽골어의 흔적 중 대표적인 것으로 거명되는 ‘송골매’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에 사냥용으로 공급되는데 그 값이 무려 1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가축들과 사람들을 지키는 용감 무쌍한 몽골의 개들이, 
소문대로 한 점의 두려움도 없이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서, 그 개들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차를 천천히 몰기도 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우직한 충성스러움이 더 귀하고 
아름다워 보인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으리라.

참, 그러고 보니 포장 도로를 지나치며 길 위에서 마주치는 자동차들은 
거의 대부분 현대의 엑셀 승용차다. 통역을 하던 아가씨가 이곳에는 엑셀이 대부분이고 
자신의 가족이 타는 차도 같은 것이라며 몹시 즐거워한다. 

올해 열 아홉인 몽골 소녀 ‘막내’는 훌륭한 한국어 실력 못지 않게 꿈이 많은 아가씨로 
본명은 "어트건졸", 애칭은 "어기"로 "막내"라는 뜻이란다. 
부모님과 오빠, 언니와 함께 사는 진짜 막내인 데다 귀염성 있는 말투와 행동으로 
가이드 팀에서 불리는 명칭도 막내. 우리의 외국어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외국어 23중학교에서 9년 동안 한국어를 배웠고, 학교를 졸업하고 
9월의 대학 입학까지 남은 기간을 이용해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실력도 점검하는 적극적인 친구였다.  

몽골의 학제는 초등학교 4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2년의 총 10학년제로 12학년제인 
우리보다 2년이 빠르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외국어 학원이 특히 성행하고 있으며 
고등학교 졸업시험이 매우 어려워서 매년 40% 정도의 학생들이 탈락한다고 한다. 
몽골 국립 종합대학, 국립 기술대학, 국립 인문대학 등의 전통 명문을 비롯해서
한국인 윤순재 목사가 세운 사립대학인 울란바타르 대학교 등이 신흥 명문으로 꼽히며
본고사와 내신성적을 통합한 형태의 학교 자체의 기준을 가지고 입학 시험을 치러왔는데, 
내년부터는 수학능력시험과 유사한 형태로 대입제도가 바뀐다는 것이다. 

막내는 국립 인문대학교(후물리깅 이흐 소르고일) 영어통역과에 진학하여 
여행경영학을 복수전공할 계획을 품고 있다. 

창 밖으로 간간히 보이는 문자들이 모두 키릴 문자 뿐이어서 물어 보았더니, 
막내는 몽골에도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전통 문자가 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그러다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 1921년의 몽골 인민혁명 이후,
러시아의 키릴 문자가 의무적으로 보급되면서 전통문자의 공식적인 사용이
뜸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막내의 부모님 세대는
키릴문자의 사용은 물론 러시아어로 의사 소통까지 가능했지만, 
1990년대 러시아의 개혁 개방 정책과 소련의 붕괴로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는
영어를 비롯한 한국어, 독어, 일어와 같은 제2 외국어의 학습 열풍이 불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막내 역시 그 흐름을 타고 있는 셈이고... 

문자혁명을 통해 본격적으로 근대화를 시작했던 터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몽골 역시 전통문자로는 수행하기 어려운 전산화의 문제 등
여러 가지 현실적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이대로 자신의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일 게다... 요행히 아직까지는 전통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이들이
제법 남아 있다는 것이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되었다.  

막내는 울란바타르에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이 있지만,  
6월에서 8월에 이르는 긴 여름방학이 아까워서 열 일곱 무렵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자신처럼 통역이나 가이드 일을 통해 경력을 쌓으며 
건강한 청소년기를 보내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럽고 예쁘던지, 대입 귀신에 들린 우리 아이들에게 
몽골 청소년들 같은 자유와 책임의 기회를 주고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국에서라면 저녁 뉴스가 이미 끝났을 시각, 마음을 추스리고 창 밖을 보니 
저 멀리 낙타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몽골의 전통 가옥인
천막 형태의 겔이 위용 있게 들어선 여행자 캠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몽골의 아름다운 땅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넓은 들판, 맑은 공기, 그리고 착한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막내가 내 수첩 안쪽에 할아버지께 배운 전통문자로 적어준 
환영의 인사가 새삼 실감이 났다. 우리는 정말 몽골에 온 것이다.
(동행기 2편은 내일 계속됩니다.)

글 / 이진주 (rubypear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