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말타기" 사전 답사 동행기 2

<헨티에서 울란 바타르로  가는 도중 찍은 몽골의 석양>

<몽골 초원과 힘차게 달리는 말들>

<윤기가 넘치는 몽골의 말들>

<우리의 서낭당이라 할 수 있는 몽골의 "오보"에서 찍은 사진. 오른쪽 세 번째(주황색웃옷)가 필자 이진주님>

<몽골에서 말타기-왼쪽부터 책읽고 밑줄긋기 대회 수상자 배재이님, 답사기를 쓰고 있는 이진주님, 고도원>

 

 ‘몽골에서 말타기’ 답사 동행기 (2) 

 

 둘째 날 (5/16(월))

7:00 기상. 세면.
8:30 소 혓바닥 요리 '우흐링 헬', 그리고 밀가루에 고기를 넣은 
       전통 수프 '방탕'으로 아침 식사. 
9:00 가이드와 함께 말 타기.
10:00 바다처럼 넓은 어기 호수로 출발.
2:30  호수 도착. 무시무시한 이빨을 가진 데다 양 손을 한껏 뻗쳐야 잡을 수 있는 
        커다란 물고기가 잡힌다는 호수 주위로 미니 마라톤 코스 점검.
3:00 헝가리 식 굴라쉬에 러시아 식으로 마요네즈를 첨가한 수프로 점심.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가락 뜨자 잠깐 싸한 현기증이 느껴짐. 
4:30 다시 캠프로 이동.
7:30 MAT 캠프 도착.
8:00 찜질 효과가 있다는 캠프 주변의 모래 언덕 산책.
8:30 다시 한 번, 저녁 말 타기.
9:30 갓 잡은 염소 한 마리를 갖은 양념 및 돌과 함께 익혀낸 '허르헉'으로 
      푸짐한 저녁 식사.
10:30 겔 외부에 세워진 세면장에서 샤워.
11:00 취침. 밤새 겔 외벽을 빗소리를 내며 두드리던 강한 모래바람 때문에 뒤척임. 

월요일 아침,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다소 낯설면서도 가벼운 흥분을 가져온다. 이것이 휴가의 맛이로구나 싶은 기분이랄까. 
아침으로 나온 고기와 밀가루를 넣은 전통 수프 ‘방탕’은 
요리경진대회에서 금상을 받기도 한 훌륭한 것으로 
상한 속을 어루만지는 듯한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었다. 
거기에 ‘우흐링 헬’이라고 하는 소 혓바닥 요리까지 덧붙여진 
진귀한 식사를 마치고 말을 타러 나섰다.

철저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산물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에서는, 
단지 말을 타고 중국으로 침입해 들어온 잔혹한 오랑캐 정도로 밖에 
그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몽골인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들은 새카맣게 탄 얼굴에 
순박하고 선하기 그지 없는 눈빛의 사람들이었다. 
몽골의 친구들이 이끌어주는 선량한 말을 타고
한 시간 정도 캠프 주위를 돌아다녔다. 
캠프 운영자이며 동시에 말 타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가이드 손 사장님은 물론, 
우리 답사팀 일행 8명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모두들 처음 타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엉덩이며 허벅지가 그다지 아프지도 않았고... 

물론 일 대 일로 붙여진 승마 가이드들이 안전하게 이끌어 준 덕분도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에게는 말 타기가 체질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한국인이 기마 민족이었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증명될 수도 있을 게다. 
몸 속 어느 세포엔가 기록되어 있는 듯 처음 보았는데도 낯설지 않은 땅, 
조상들이 말을 달리며 누볐을지도 모르는 그 공간에서 
수 세기가 지난 뒤 우리들은 이토록이나 닮은 얼굴을 하고 만났다. 
우리 몸을 타고 흐르는 피가 이끌고 온 곳에서 만난 사람들.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놀라운 유전자의 기억력에 잠시 숙연해졌다.

마라톤 코스를 점검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창 밖으로 언뜻 살펴보기에도 
몽골에는 파란색의 깃발을 꽂은 ‘오보’가 많다. 
이는 우리의 서낭당 같은 샤머니즘 신앙의 산물로, 
사람들은 오보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고 수복을 기원한다. 
후에 선물용으로 쓸 전통 모자를 살 때 알게 된 것이지만, 
깃발 중에 유난히 파란색이 많은 것은 그것이 몽골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일행도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그 주위를 세 바퀴 돌았다.

다시 차에 올라 막내에게 자신 있는 한국 노래 한 곡 불러보라고 했더니 
나이답지 않게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부르기 시작한다. 
모두들 뭉클해진 마음으로 크게 따라 불렀다. 
우리 또래들이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무작정 <비틀즈(Beatles)>와 
<퀸(Queen)>, <아바(ABBA)> 등의 옛날 노래에 먼저 이끌렸던 것처럼, 
좋은 노래는 세월이 지나도 누구에게든 다시 발견되기 마련인가 보다. 
이어 막내가 <아리랑>과 <정선 아리랑>의 메들리, 그리고 터보의 <회상>을 
랩까지 능숙하게 소화하며 불러내자 다들 즐거워졌다. 

흥에 겨운 기사 할아버지가 차속에서 틀어준 보니 엠(Boney M)의 노래
 <Show me a motion>이 흐르자 덜컹거리는 차 안에는 
한동안 복고적으로 흥겨운 분위기가 흐르기도 했다. 
70년대 디스코 열풍을 타고 크게 유행했던 보니 엠다운 솜씨였다. 
이어지는 <Rivers Of Babylon>의 첫 소절에서는 입을 모아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라는 오래된 코미디 속 패러디 음악을 열창하기도 했다.

한국의 7배, 남한의 17배에 달하는 큰 땅 몽골에서도 
인기 직업은 우리처럼 특정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 
은행원이나 사업가 등의 경영, 경제 전문가, 법률가, 의사 등
소위 전문직을 선호하는 실정은 우리나라와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다소 독특한 점은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뒤섞인 특이한 정치 제도로, 
74명의 국회 의원들을 비롯한 정치인의 파워가 
오히려 대통령이나 수상의 권한을 능가한다는 것이 이채를 띤다. 
그러니 몽골 최고의 직업은 정치인이라는 이야기가 아주 빈말은 아닌 모양이다. 

텁텁해진 마음으로 내다본 창 밖으로는 사진으로만 접했던 
5, 60년대 우리나라의 풍경이 펼쳐졌다. 
낡았다고 표현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낙후된 시설의 주유소 주위로 
한눈에도 비위생적이라 짐작되는 얼음과자와 아이스크림 판매원들이 
자동차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애잔한 마음에 사진을 찍자고 청하니 강하게 거부하며 자리를 피한다.
동정하는 듯한 표정의 이방인에게 '못 사는 나라'의 증거를 넘겨주기 싫어서였을까

사막 한가운데서도 번쩍번쩍 빛을 내는 미국의 라스베가스 같은 곳도 있는데 
이곳의 초원과 사막은 단순히 안타까움의 정도를 넘어 답답할 지경이라는 
누군가의 장탄식이 들려왔다. 

한편 곳곳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은 아이들을 만나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헌 옷가지라도 깨끗이 빨아 모아 오면 유용하게 쓰일 거라는 제안도 나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순진무구하고 해맑은 표정의 아이들이 눈물겹게 사랑스러웠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그것을 보여주면 무척이나 좋아했다.  
가끔씩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에게 건네는 ‘센 베노’(안녕하세요),
‘바야를라’(감사합니다) 등의 몇 마디 몽골어는 그 와중에 썩 유용했다.  

2시 반, 마침내 어기 호수에 도착했다. 미니 마라톤 코스로 정해진 
바다처럼 넓은 호수 근처를 살펴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까마득하게 넓은 초원을 지나면서, 문득 예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사람으로 태어나 일생에 한 번쯤은 끝없는 사막과 큰 바다를 보아야 한다는 것. 
몽골에 오면 바다는 아니더라도 그만큼 넓고 파도까지 치는 깊은 호수와 
사막을 볼 수 있으니 일단 두 가지는 해결되는 셈이다.
그만큼 무궁무진한 땅이었다, 몽골은. 

곳곳에 동물의 뼈가 늘어서 있는 들판을 지나며 문득 쓸쓸한 생각도 들었다. 
몽골의 끝도 없이 넓은 땅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가의 관리 하에 
용도에 따라 신고제로 배분되는 형태였는데, 올해 들어 사유화가 시작되면서 
땅 값이 2배, 3배로 폭등하기도 했다고 한다. 부동산 투기의 현장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초원인 채로 놓여져 있는 땅들도 많아, 
만일 혼자서 이곳에 왔다면 저렇게 쓸쓸하게 죽어 아무도 모르게 풍장 되겠구나 싶어졌다. 
그야말로 사방 천지가 바람의 길이었다. 

루카치였던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은 시작된다더니, 
우리는 신경숙의 소설 제목처럼 ‘멀리, 끝 없이 펼쳐지는 길’ 위에서, 
G.O.D.의 노래 <길>을 함께 불렀다.

저녁 식사로는 몽골의 유명한 전통 요리인 ‘허르헉’을 맛보았다. 
고기를 커다란 통에 넣고 갖은 양념을 한 뒤 큼지막한 돌들을 함께 넣어 익히는 
몽골의 전통 요리였다. 오늘 우리의 식사는 염소 한 마리였다. 
비리지도 않고 담백하며 적당히 양념 맛이 배어 여간 맛있는 것이 아니었다. 
허르헉을 만드는 데 사용한 돌들을 휴지에 싸서 찜질을 하듯 
몸의 이곳 저곳에 대는 것도 신기한 풍습이었다. 
원래는 기름이 뚝뚝 흐르는 채 이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가 좋다지만, 
이 정도로도 모처럼의 장거리 여행에 놀란 어깨며 팔이 다소 나아지는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오니 모깃불과 보온 효과를 겸하는 난로 속에서 
장작 타는 냄새가 정겨웠다. 바알갛게 익어가는 저 시간들 속에서
우리들의 꿈과 추억도 함께 성숙해져 가리라.
어느덧 싸늘해진 몽골의 밤이 깊어지면서
매서운 바람 소리가 잠과 꿈 사이를 오가며 어지러이 춤추고 있었다.
(동행기 3편은 내일 계속됩니다.)


글 / 이진주 (rubypearl@freechal.com)

 

 

 

 

    ---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



주재경님(5월-늦게나마 생일 자축)
정선희님(6월3일), 노인옥님(6월3일)
이경숙님(6월4일), 엄용호님(6월4일-아들생일)

이금화님(6월9일-45세 생일)
최성곤님(6월9일), 김원임님(6월9일)
김자영님(6월10일),전미영님(6월10일)
심은섭님(6월10일-32세 생일), 박행준님(6월10일)
명일수님(6월10일), 이선규님(6월10일-59세 생일)
안안례님(6월10일-막내형동이 두돌 생일)

김점자님(6월11일-어머님생신과 며칠후 본인생일)
이숙경님(6월11일), 김철안님(6월12일)
이종경님(6월12일-62세 생일)
조은경님(6월12일), 이용호님(6월12일)
김경아님(6월12일-생일과 15일 김성열님과 결혼식 자축)

임재묵(6월13일-딸 임세희님 생일)
허성철님(6월13일), 이지연님(6월13일)
김현수님(6월7일), 정명숙님(6월13일)
김미경님(6월13일-시어머님생신과 12일 본인생일)
이만영님(6월13일)

최은순님(6월14일-32세 생일)
윤신애님(6월14일-52세 생일)
이수근님(6월14일), 이학명님(6월15일)

조미경님(6월16일), 길호남님(6월16일) 
박혜영님(6월16일), 최영로미님(6월16일)
이정숙님(6월16일-41세 생일)
김형숙님(6월16일-30세 생일)
김정미님(6월16일), 강혜정님(6월16일)
조현미님(6월16일), 이용순님(6월16일)

이현주님(6월17일), 박옥희님(6월17일)
정동열님(6월17일), 김윤정님(6월17일)
송영자님(6월18일-52세 남편생일)
강영주님(6월19일). 정희란님(6월19일-31세 생일)
임현주님(6월19일), 김은경님(6월19일-29세 생일)

이현숙님(6월20일),  한순안님(6월21일)
김상섭님(6월21일), 박정순님(6월22일-지난생일)
한영실님(6월22일), 임순오(6월22일)

박금화(6월23일)
윤혜영님(6월중 생일자축과 친구결혼축하)

박명희님(6월1일-결혼한날 자축)
정길자님(6월9일-큰딸 졸업축하)
김진희님(6월9일-창립10주년 자축)
박상훈님(6월13일-지인과 금연선언 성공기원)
곽애자님(6월14일-아들 첫휴가기념)
문인나님(6월16일-2번째 월급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