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말타기" 사전 답사 동행기 4

<대초원과 말과 몽골 사람>

<몽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칭기스칸의 후예들>

<몽골의 밀밭 전경>

<씨티캠프에서 본 풍경 >

<헨티아이막 부근 들꽃이 만발한 몽골초원에서 한컷-앞줄 빨간 줄무늬 웃옷이 필자 이진주님, 그 뒤의 뒤가 고도원>

<게르를 짓고 있는 모습>

 

 ‘몽골에서 말타기’ 답사 동행기 (4) 

 



넷째   (6/18(수))

7:30
 기상, 세면.
8:00
 아침식사. 룸메이트 배재이 언니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고통스런 밤을 보냄. 
     
룸메이트라면서 그것도 모르고 잠든 것이 몹시 미안해짐. 언니가 웃어주어 마음이 풀림.
9:30
 핸티아이막(아이막은 우리말로 ‘(道)라는 .) CT 캠프로 이동하기 , 
     
테를지의 거북 바위 주변을 상세히 살핌. 대단한 경력의  통역 “항가이마” 등장.
12:30
 풀밭에서 식사. 도시락마다 큼지막하게 들어있는 ‘대륙적인’ 닭고기 요리가 인상적임. 
1:30
 흙과 자갈이 뒤섞인 길을  끝없이 이동.
9:30
 마침내 캠프 도착. 자그마치 12시간이 소요되는 거리. 
10:00
 재이 언니의 쾌유를 위한 저녁 기도. 러시아 식으로 변형된  굴라쉬 수프와 
      
여기 와서 처음 먹어보는 시지 않은 , 그리고 당근과 소의 내장이 
             
보기 좋게 버무려진 샐러드로 저녁식사.  번째였기 때문인지 
              
마요네즈가 듬뿍 들어간 굴라쉬 스프가 상당히 입에 맞음.
11:00
 본진의 일정과 루트를 결정하는 문제를 두고 실무진 대책회의 시작. 
      일부
 일행은 샤워  취침 준비.
1:30
 실무진 대책회의 종료.  번의 위태로운(?) 숙의 끝에 최종 일정이 마무리됨. 
   
 지도자의 길이란 때로 사사로운 인정에 이끌리기보다 괴롭더라도 
    
대의를 생각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음.  
    별이
 쏟아지고 달이 불타는 , 현지의 여인들이 여자 일행들이 묵은  안을 오가며
    이불을
 구해다 덮어주고 난로 불을 돌봐주는 초특급 서비스를 제공함. 덕분에 아주 
    달게
 잤음.

 

 

 

재이 언니가 배탈이 심하게 났다. 조미된 김이며 각종 통조림 등의 찬거리를 

가방 가득 넣어와 끼니 때마다 일행들에게 권하던 착한 언니가 

밤새 화장실을 오가며 고통스러워 했단다. 물과 음식이 바뀐 데다 

종일 덜컹거리며 자동차를 탔던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게다. 

새벽에는 물도 나오지 않아 준비해  물티슈로 어렵게 뒷처리를 하면서도, 

문소리에 내가 깰까  잔뜩 조심했다고 한다. 명색이 룸메이트라면서 

그것도 모르고  혼자서만 편히 잤구나 싶은 생각에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바를 몰라 하는 내게, 나까지 잠을  자면 언니는  미안해졌을 거라며 웃어준다.

아침을
 먹고, 어제 저녁 늦게야 공원 안으로 들어온 관계로 조금 서운하게 지나쳤던 

테를지의 남은 명소들을 조금  둘러봤다. 첫날부터 내내 희부연한하늘을 보다 

모처럼 파란 하늘을 만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날이 흐릴 때는 

어쩔  없이 땅만 보았는데, 이제는 하늘이며 주위 풍광 같은 다른 것들의 모습도 

고루   있게 됐다. 이곳은 이제껏 지나왔던 지역에 비해 나무가 많은 편이고, 

떼지어 다니는 가축들의 모습에도 어딘지 모르게 풍요로운 데가 있어, 

마치 알프스에   같다. 반복되는  타기가 지루할 법도 하건만, 

날씨 덕분에 한결 명랑해진 마음으로 ‘고도원의 오지탐험이다, 

도전 지구탐험대, ‘극기훈련이다 하는 농담들을 나누며 한참을 웃었다. 

단순한
 내부 구조 덕분에 오히려  강하다는 러시아산 승합차 ‘푸르공 

우리보다 조금 앞서 진로를 트고, 다른 일행들은 ‘그레이스’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자동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어쩌나 근심했었지만 다행히  무리는 없는  했다. 

몽골에서는 아예 승합차를 그레이스라고 부른단다. 

얼마 전까지 우리가 ‘봉고라는 이름을 그렇게 썼던 것처럼.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의 물품들에 붙여진 고유명사가 몽골의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예가 

제법 있다는데, ‘도시락이라는 이름의  라면도 여기에 해당한다.   몽골에서는 

, 도시락 먹어.라고 말하면 ‘,   라면 먹는구나.라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랑스런 몽골의 대표 승합차 그레이스를 타고, 

상처 부위를 다스리는  쓰인다는 작은 양귀비들과 민들레가 지천인 길을 지나갔다. 

여기서는 재미있게도 민들레를 ‘우유가 나오는 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유는 줄기를 꺾었을  나오는 우유 같은 진액 때문이다. 

오늘의
 목적지인 핸티아이막은 칭기즈칸이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기골이 장대하고 거친 성품으로 묘사되어 왔던 그는, 

오히려 체격이 왜소하고 온화한 성품이었다고 한다. 무술이 뛰어난 용장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지모가 탁월하여 전략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데 능했다는 것이다. 

거기 더하여 몽골인 특유의 ‘수평적 평등의식 기반으로  동료애를 꿰뚫어 보고, 

친히 군사들 사이에 섞여 들기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하니, 

시대를 앞서 가는 지도자로서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던  했다. 

다만 그의 군대를 두려워한 서양인들이 칭기즈칸을 자신들이 상상하는 

흉포한 침략자의 모습으로 그려놓은 것이 지금까지 그의 이미지로 굳어졌던 것일 .

그러나
 안타깝게도 칭기즈칸에 관한 모든 기록들이 철저히 사라져 

이제는  이름의 정확한 의미조차도  수가 없다고 한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고대 터키어인 ‘텡기스(바다) 방언이었다고도 하고, 

그가 왕으로 즉위할  다섯 가지 빛깔의 길조들이 ‘칭기즈, 칭기즈’ 하고 울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샤머니즘 신앙에서 ‘광명(Hajir Chinggis Tengri) 나타내는 

신의 이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는데, 확실한 어원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영웅은
 호색이라지만,  와중에도 칭기즈칸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우리 핏줄인 “홀랑이었다고 전해진다.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인물의 아내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같은 한민족의 여자로서 문득 그녀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재미있는 , 어제 막내를 통해 들었던 그의 어머니 “호엘룬 관한 일화다. 

칭기즈칸은 용맹한 장수 “예수게이 아들로  형제가 모두 여섯이었는데, 

어린 시절 서로 의가 좋지 않아 싸우기만 했다고 전해진다. 

  호엘룬이 여섯 아들을 불러 모으고 화살을 주어 부러뜨려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화살  개는 쉽게 꺾이지만, 화살  묶음은 누구도 꺾을 수가 없으니 

너희도 이처럼 형제 간의 우애를 지키라 의미였음이 분명하다. 

들을수록
 어린 시절 들었던 우리네 이야기와 흡사하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말해주었더니, 애국심과 자랑스러움으로 신이 나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막내가 돌연 마음이 상했는지 말이 없어졌다. 

다행히  아이다운 천진함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역시 문제는 ‘자존심이었던 게다. 

돌아와서 <몽골비사>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막내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칭기즈칸의 어머니 호엘룬이 아니라 그의 가계   꼭대기에 위치한 

시조모 “알란 고아 일화다. 남편 “도분 메르겐에게서  아들을 낳고 

그의 사후에  아들을  낳아 어미로서의 정숙함을 의심 받게 되자, 

알란 고아는 다섯 아들을 불러 모아 태양빛에 의해 회임하게   아들의 비밀을 밝히고 

화살의 비유 들려주며 훈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광회임 설화는 북방민족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으로 막내의 기억 속에서 어쩌면 착오가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 

칭기즈칸의
 부모와 관련하여 정작 흥미를 끄는 부분은, 

빼어난 미모를 가진 어머니 호엘룬을 납치한 아버지 예수게이의 이야기다. 

어느  오논 강변에서  사냥을 하던 예수게이는 다른 종족으로 시집 가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첫눈에 반해 형제들을 이끌고 신부 약탈을 감행하였고,

그녀가  칭기즈칸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로부터 시작된  부족 간의 악연은  아들대로 고스란히 이어져, 

칭기즈칸 역시 상대 부족에 의해 아내를 약탈당하는 앙갚음을 당하게 되었단다. 

오늘날의 전쟁에서도 구태의연하게 반복되는 정복과 약탈, 그리고 복수의 악순환인 셈이다.

한편,
 막내도 그랬지만 우리의  통역 “항가이마” 역시, 관광객들이 자신의 나라를 

조금이라도 ‘억울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는 금세 방어적이 된다. 

결코 외면해버릴  없는 조국의 현실이란 얼마나 가슴 뜨거운 것이겠는가 싶어 

덩달아 가슴이 울컥거렸다. 어쩌면 이런 감상들은 아마도 

몽골의 역사를 지켜보며 느껴지는 ‘기시감’ 때문이리라. 

동란 이후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나라가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진주를 찾는 일보다 어렵다며 혀를 찼다는 이야기를 국사 시간에 전해 듣고, 

친구들과 울분을 터뜨렸던 기억이 있다.  때의 부끄럽고 쓰라린 감정을 

나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투영하며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터키나 몽골 같은 몇몇 나라들의 근대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가 지켜내지 못했던 후회스런 역사의 어느  장면들이 

자꾸만 연상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욱 그이들에게 집착하게 되는지도.

그.러.나.
 이곳의 호수는 일견 고요해 보여도 소나 말이 들어가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깊이를 가지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혹은 얕보는 생각에 

준비 운동 없이 물에 들어갔다가는  차가움에 놀라 심장마비로 죽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이리라. 나는 우리의 역사 속에,

그리고 이들의 역사 속에 흐르는 이런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을 믿는다.

테를지에서
 울란바타르까지는 12시간 가량 가야 하는  길이란다. 

 안에서 항가이마와 조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름은, 

몽골의 대표적인 사막인 ‘고비와는 정반대로 ‘비옥하다 뜻이란다. 

민속학을 전공하다 진로를 바꿔 국립 인문대학교의 한국어 석사 과정을 마치고, 

얼마 전에는 우리 정부가 초청하는 유학생 선발시험에서 1등을  재원이다. 

또한 신기하게도 이번 몽골 행을 준비하는   도움을 주었던  선배의 

몽골 체류시절 제자이기도 했다. 어쩌면 세상은  ‘인드라의 그물처럼 

서로를 비추는 인연의 구슬들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녀차별이
 크게 없는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대로 몽골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항가이마도 바로 그런 경우였다. 

얼굴도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라 그런지 외모가 단정하면서도, 

막내 특유의 어리광이 없어 어딘지 함부로 대할  없는 위엄이 있었다. 

민속학에서 한국어 교육학으로 그리고 다시   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꿔, 

다음 학기부터는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공부할 예정이다. 

결혼을 일찍 하는 몽골의  풍습 때문인지, 일부러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녀 역시 기혼녀란다. 남편도 그녀처럼 공부를 하는 사람인데, 

그녀의 부양 가족임이 인정되어 생활비를 지원 받으며 

 8월에 함께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된다. (뉘신지 정말 장가    갔다!) 

그녀가 조용히 털어 놓은 꿈은 문교부 장관과 같은 몽골의 고급 공무원이다. 

의식 있는 지도자가 절실한 몽골에 진정 ‘빛이 되는 여자 되기를 빌어주고 싶어졌다.
.
한편,
 핸티아이막 캠프를 운영하는 현지 여인 “한다” 씨의 고향마을 

오문데그르를 지나며 그이들의 추억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마침 그곳은 씨름대회에서 12년 동안이나 1등을  장사를 배출한 곳이었는데, 

몽골의 씨름은 말타기  활쏘기와 함께 몽골의 3대 국기  하나로 

사람들에게 매우 사랑 받는 스포츠다. 그래서 선수들의 지명도나 인기가 

대통령의 그것을 능가한단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아주머니지만, 

자랑스러움으로 빛나는 얼굴이 소녀처럼 고왔다. 이래서 고향이 좋다고 하는가 보다.

마침내
 핸티아이막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아홉시 . 출발한    시간 만이었다. 

이런 저런 구경거리들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연이은 이동으로 몸은 

일정 정도 이상의 피로를 느끼고 있는  했다. 몸이 마음을 배반하는 일은 

3 수험생 시절을 전후로 이미 수도 없이 느낀 일이지만, 이것은 어쩌면 생존의 문제다. 

대한민국 여자의 자존심이 있지, 여기서   수는 없었다. 

그래서 병든 닭처럼 나도 모르게 꼬박 꼬박 졸다가도 

누군가가 ‘이야~’ 하는 경탄의 소리를 지르면  때마다 눈을 번쩍 떴다. 

이곳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긴장감을 심어주고 있는  했다. 

(5번째 여행기는 내일 계속됩니다)

 / 이진주 (rubypear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