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말타기" 사전 답사 동행기 5

<우르긴호수 풍경-호수 근처에서 미니 마라톤이 예정되어 있다>

<울란 바타르의 외곽 주유소 전경>

<몽골 테를지의 국립 공원에 있는 거북바위>

<몽골말과 천진하게 웃고 있는 소년>

<야크를 타고 있는 소년. 가운데 V자를 그리고 있는 사람이 이번 여행 사진을 촬영한 아침지기 윤나라팀장>

 

 ‘몽골에서 말타기’ 답사 동행기 (5) 

 

 

다섯째 날 (6/19(목))

 

7:30 기상, 캠프 뒤 칭기즈칸이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오논’ 강변에서 세수를 하고
       잠깐 발을 담금. 물이 유난히 차고 맑았음.
8:00 호떡을 닮은 팬 케익과 수태차 등으로 아침 식사.
9:00 유난히 잘생긴 말을 타고 아침 산책,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 촬영.
10:00 용맹한 개들이 자동차에 까지 사납게 달려드는 것을 뿌리치며 울란바타르로 출발.
1:30 다시, 풀밭 위에서의 점심. 팬 케익, 프로슈키(고로케 형태의 러시아 음식),
       각종 과일 등이 풍성하게 차려진 몽골 여행 최고의 별미였음.
2:00 다시 출발.
11:00 울란바타르 시내 도착. 재몽 한인 사업가들이 즐겨 묵는 호텔 성격 때문인지
         입구부터 갈 데 없는 한국풍이었음.
11:30 김치찌개와 생선구이 등 한식으로 저녁 식사.
12:00 샤워 및 취침 준비. 실무진 회의.
1:30 시내 PC방 상황 점검팀 숙소에 도착.

 

어제 저녁 늦도록 고도원 님과 회의를 가졌던 실무진들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붉은 달과 쏟아지는 별을 보았다며 자랑을 한다.
아뿔싸, 실수다! 쌍안경까지 들고 와서 그런 장관을 놓치다니...
그러고 보니 러시아 쪽의 큰 불과 다른 이런저런 이유들로
도착한지 닷새가 되도록 변변한 밤 하늘 구경을 하지 못했다.
밤 11시까지 해가 떨어지지 않는 것을 고려해 보면
진짜 밤 풍경은 새벽에나 펼쳐지는 귀한 것이었이었을 게다.
내 생각이 짧았다. 하룻밤 덜 자면 어떻다고.
이제 울란바타르 시내로 들어가면 매연 때문에, 저이들이 보았다는
불타는 ‘레드 문’과 쏟아지는 몽골의 별들을 다시 볼 수 없을 텐데…
이런 아쉬움을 아셨는지 오는 7월 20일에 출발하는
본진 여행 때에는 ‘몽골에서 별 보기’ 행사를 따로 마련해 주신단다.
그 밤의 빛과 그림자들, 두 눈 가득 담아와 제게도 나누어 주시기를. 

먼저 씻으러 갔던 이가 서둘러 돌아오며 더운 물이 안 나온다는 ‘비보’를 전한다.
저런, 한여름에도 뜨거운 물이 있어야만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이가 나를 포함해 여럿이다.
우리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칭기즈칸이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오논” 강에서 세수를 하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안내하는 이가 단호하게 말하기를 세수와 양치는 가능하지만,
배뇨 배변이나 빨래는 절대로 안 된단다.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그렇게 지켜진 맑은 물이라 안심하고 양치도 하고 맨발도 담그며 상쾌한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힘이 없던 재이 언니는,
돌처럼 딱딱한 침대와 강변의 자갈 발 마사지로 장수하겠다며 농담을 한다.
한결 나아진 게다. 어젯밤 기도의 효능이 아니었을까?
우리들은 그녀에게 ‘기도대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흑설탕 시럽만 안 들어 있을 뿐 우리네 호떡과 모양도 맛도 흡사하여
가장 인기가 좋았던 팬 케익과 햄, 시지 않은 빵과 계란 등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몽골 전통차로 잘 알려진 ‘수태차’를 처음으로 마셔 보았다.
그러나 분유를 탄 것 같은 달고 부드러운 맛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시큼하면서도 비릿한 맛이다. 많은 이들이 다시 홍차나 커피를 부탁했다.
머물러 있는 동안 우리들의 식사를 담당했던 이들이 워낙 요리 솜씨가 좋았던 데다,
다행히 나 또한 먹을 것에 대해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편이라
대개의 몽골 음식들이 입에 잘 맞았지만, 그럼에도 끝내 즐길 수 없었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바로 지나치게 발효된 시큼한 빵과 오늘 마셔본 수태차의 맛이었다.
역시나 독특한 맛으로 잘 알려진 마유주 ‘아이라크’도
한 번쯤 시도해 보기를 희망했는데 아쉽게도 아직 숙성되지 않았단다.

오논 강의 정기 때문인지 유난히 늠름하고 잘생긴 말을 타고
“테무진”(칭기즈칸의 아명)이 뛰어 놀았을 너른 들판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달려 본다.
일부러 지금까지의 러시아식 가죽 안장과는 사뭇 다른 몽골식 나무 안장을 골랐다.
보호대 부분이 높고 나무라 몹시 딱딱해서 초보자들에게는 불편하기 그지 없지만
장거리에는 오히려 유리한 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먼 옛날 칭기즈칸의 군사들이
유럽 일대를 호령할 때도 이 나무 안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 자줏빛의 전통 의상을 입은 식당 종업원들이 너무 예뻐서 기념 사진도 여럿 찍었다.
당분간은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모든 것이 아쉽다.

들판에선 너구리나 족제비, 혹은 커다란 두더쥐까지도 연상시키는 ‘타르박’이
보일 듯 말 듯 애를 태운다. 알고 보니 조금 몸집이 큰 설치류로 고기가 아주 맛있단다.
하지만 그 놈들의 동작이 너무 빨라, 잡아 먹기는커녕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타르박은 사냥꾼들이 즐겨 잡는 메뉴지만, 몽골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근처의 ‘빈데르’ 산 일대에서는 암묵적으로 사냥이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오논 강에서도 느낀 바지만,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집단적인 무언의 금기다.
다시 울란바타르로 향하는 차 안에는 다소 심각한 이야기들이 흐른다.
이제야 제대로 적응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떠나야 한다니.
무거운 마음을 달래려는 듯 어디선가 ‘사전(事前)’ 답사는 영어로
‘Dictionary(辭典)’ Inspection Tour가 아니겠느냐는 재기 발랄한 농담이 들려온다.
딴은, 아는 바가 별로 없으니 사전 찾듯이 이곳저곳을 성실하게 봐야 하기는 하겠다.
이런 재치는 아침지기 윤나라 팀장님의 솜씨다. 흥겨워지는 분위기를 타서
고도원 님은 이 참에 항가이마에게 노래를 청하신다.
우리들은 옳거니 싶어 와아, 박수를 친다.

몇 번의 새색시 같은 수줍음 끝에 시작된 그녀의 노래는 제법 솜씨가 좋은 것이었다.
가늘고 애절한 가락이 우리네 것과 흡사하다. 이번에는 한국 노래로 또 한 곡을 청하였다.
그녀는 다시 <사랑으로>를 부르기 시작한다. 대학 시절 어느 엠티 자리에서나
꼭 한 번씩은 불려졌던 이 노래는, 몽골 답사의 짧은 일정 속에서도
두 번이나 불려지는 기염을 토한 셈이다! 그것도 현지인들에게.

이어 답가 차원으로 일행들이 하나씩 돌아가며 불렀던
<저 푸른 초원 위에>나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축복송>,
<깊은 산 속 옹달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광야에서>, <아침이슬>,
<오! 샹제리제>, <여자여자여자>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 때문에,
승합차 안에는 교회와 유치원과 대학 운동권과 성인 나이트클럽과 샹송이 혼재하는
아주 재미있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한 마디로 퓨전!

그러다 곧 진지한 분위기로 돌아가 이런 대지에서
<말 달리자>며 <광야에서>, <아침이슬> 등의 노래들을 함께 부르면
얼마나 재미 있고 의미롭겠느냐며 본진의 행사를 구상해 보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동행기가 점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백만 독자들에게 고백하기 다소 부끄러운 비밀 하나를 털어놓아야겠다.
바로 우리 일행들이 몽골 들판에 줄을 지어 꽃을 따러 갔던 이야기다.
아니, 흥에 겨워 꽃 몇 송이 꺾었기로소니 무에 그리 문제가 되겠느냐고?
사실 여기서 ‘꽃 따러 간다’는 말은 몽골 고유의 표현인
‘말 보러 간다’를 응용한 답사팀 내부의 은어로, 우리식으로는
‘볼일 보러 간다’, 혹은 ‘소피 보러 간다’에 해당한다.

즉, 화장실은커녕 인가도 드문 벌판 위를 지나다 보니
별 수 없이 몽골 땅에 천연의 거름을 한껏 뿌려주고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여행은, ‘몽골에서 꽃 따기’이자
‘몽골에서 말 보기’이기도 한 셈이었다.

참고로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는‘여자는 왼쪽, 남자는 오른쪽’이 있는데,
탁 트인 벌판에서 아무리 가도 꽃 따기나 말 보기에 적합한 엄폐물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 타고 가던 자동차를 중심으로 남녀 일행들이
‘모세가 홍햇물 가르듯’ 쩍 하고 갈라지는 광경을 묘사하여
고도원 님이 직접 만들어낸 말이다. 처음에는 단지 차를 세우고
일행들에 화장실에 갈 시간을 알리는 상징적인 농담이었는데,
나중에는 정말로 자동차 타이어에 숨어 일을 보는 극한 상황까지도 경험했다.
정말이지 거기 밖에는 숨을 데가 없었던 것이다. 일을 치르다 슬쩍 훔쳐보면
남자분들은 저 멀리서 공연히 하늘만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곤 했다. 
이제사 얘기지만 남자분들이야, 음주 시 전봇대 근처에서 다져놓은 실력을
오늘에 십분 되살려 손쉽게 일을 치르고 돌아올 수 있어도,
조신함을 생명처럼 여기라 배워온 양가 규수들에게
어디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었겠는가. 하여, 처음에는
누가 볼세라 낯을 가리며 순번을 정해 볼일을 보던 것이,
나중에는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며 누구 엉덩이가 가장 예쁜가,
뉘 집 딸이 아이를 잘 낳겠는가를 놓고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는
초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아이고, 망측해라.

하지만 여러분도 몽골에 갈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 번 체험해 보시라.
생각보다 유쾌하니 말이다. 며칠이 지나도록 초인 같은 참을성을 발휘하며
꽃 따기 대열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던 모 여인도, 열 두 시간의 강행군에
그 의지를 꺾고 나선, 오히려 앞장서 꽃 따러 가자고 선동할 정도였으니.
중이 고기맛을 알면 초가삼간을 태운다던가, 아니면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던가. 모든 일은 원래 늦바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
아무러나 정말로 강인한 대한민국의 딸들이다.
그렇게 빠른 시간에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다니...

사실 거기에는 ‘여기까지 와서 몽골의 참 맛, 대지의 기운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도대체가 말이 되느냐’는 다른 이들의 꼬드김도 한 몫을 했으리라.
아무튼 비밀의 공유자여서 그랬는지 환경오염의 공범이어서였는지는 몰라도,
꽃을 따러 다녀오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우리들의 ‘동지애’도 한결 돈독해지는
예상 외의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주체하지 못하는
예비 여행자 분들께는, 허리께에 자연스럽게 둘러 멋도 내고 수치심도 가려주는
셔츠나 점퍼 한 벌 지참하시라 권해드리고 싶다. 항가이마 추천 제품이다.

오늘 점심은 몽골이 자랑하는 맛있는 찐 감자와 고로케 형태의 러시아 음식인 프로슈키,
방울 토마토와 수박까지 한껏 차려진 풍성한 것이었다.
날씨 때문이었는지, 풍경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함께 한 사람들이 좋아서였는지
몽골에서의 식사 중 가장 맛있는 것이었다고 두고두고 떠올리기도 했다.
다시 차에 오르자 아까보다 배가 불러선지 모두들 여유가 생겨,
초원에서의 기마 데이트로부터 울란바타르 시내의 개방적인 성문화까지 아우르는
보다 광범위한 주제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성과 관련된 금기들을 해방하거나 묵인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성이 일종의 탈출구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천성이 구속을 싫어하는 유목민들이다.
하지만 벌써 고교를 졸업할 나이, 그러니까 우리보다 2년이나 적은 열 여섯 살 무렵에
임신을 하거나 아이를 데리고 등교하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라니 걱정스러울 정도다.
한편 상류사회일수록 끼리끼리의 계약 결혼을 고려한 엄격한 성 도덕이 적용된다고 들었다.

점심을 먹은 후 여흥의 마무리 곡이었던 <그댄 행복에 살 텐데>의 애절한 분위기에 젖어,
첫사랑 이야기며 현재 진행중인 연애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어디에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깔대기 이론’이라더니 여기서도 결국 빗겨가질 못하는구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상대방이 맺고 있는 다른 관계들이 제일 궁금해지는 모양이다.
여기 힘입어 고도원 님 부부의 파란만장했던 젊은 날도 맛깔스럽게 펼쳐졌다.

이리 저리 재지 않고 지독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타고난 복이다.
내게는 끝을 볼 용기가 없어서 채 시작도 못해 보고 놓아버린 사랑들이 너무나 많았었다.
이 날의 사랑학 강의는, 부부란 알면서도 모른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하는 것이라는
고도원 님의 명언으로 막을 내리고, 각자 몽골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오후 5시, 해가 떨어지려면 아직 이른 시각인데도
하늘 한 쪽이 어두워지며 먹구름이 몰려왔다. 저녁다운 저녁이 오히려 반갑기도 했다.
아까 점심을 먹으며 발견했던 옅은 먹빛의 황새 한 쌍이 일기예보를 제대로 했나 보다.
이곳에서는 그 새들이 물가 주위로 나타나면, 비가 온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기후나 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것은 역시 동물들이다.
자연보호의 당위성에 관한 문제도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채 삼십 분이 지나지 않아 기어이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는 비인데 여우비다. 백두산 호랑이가 우리만 보라고 서둘러 장가를 가는 모양이다.
11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울란바타르에 도착했다. 이제 어지간한 거리는 질리지도 않는다.
여기서 벌어놓은 인내심으로 한국에 돌아가서 몇 달은 여유 있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호텔 식당에서 간단한 한식으로 늦은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뿌듯하게 샤워를 했다.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도록 단단히 짐을 꾸리고 혼곤한 잠에 빠져들 즈음,
시내 PC방으로 인터넷 연결 상태를 확인하러 갔던 일행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1시반, 아쉬운 몽골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여행기 6번째이자 마지막 글이 내일로 이어집니다.) 

글 / 이진주 (rubypear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