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말타기" 사전 답사 동행기 6

<몽골 초원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길. 교통량이 적다>

<광대한 몽골 초원에서...>

<캠프 밖에서 여행단의 말타기 연습을 기다리는 몽골 사람들과 말들>

<광활한 초원에서의 점심식사. 밥맛이 꿀맛이다>

<몽골을 떠나면서...여행단을 싣고 갈 비행기와 공항 주변 풍경>

 

 ‘몽골에서 말타기’ 답사 동행기 (6) 

 

 

마지막 날 (6/20(금))

7:30 기상, 세면.
8:00 출발 준비.
8:30 호텔 양식당에서 조식. 계란과 햄이 두 개씩이나 놓인 푸짐한 아침 식사. 
       시지 않은 빵에 초코파이까지 등장. 이곳의 초코파이는 인기 만점의 간식으로
       무려 세 가지 브랜드의 서로 다른 초코파이를 모두 만나 보았음.
9:00 공항으로 출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내를 살펴보다 전차 형태의 ‘트롤리 버스’를 
       뒤늦게 발견하고 신기해 함. ‘아는만큼 보인다’더니 진작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짐.
9:30 울란바타르 시내와 지척에 위치한, 몽골 유일의 국제 공항에 도착. 
        마중 나온 현지팀과 작별인사. 인형과 모자, 칭기즈칸 보드카 등속의 몇 가지 기념품을 구입. 
11:10 비행기 출발. 역시 10여 분 늦춰짐. 기내 모니터로 산드라 블록과 휴 그랜트의
         로맨틱 코미디 <투 윅스 노티스(Two weeks notice)> 방영. 
         기내식은 간단한 쇠고기 요리.
2:30 인천공항 도착. 한국에는 어제 태풍이 왔다더니 습한 기운이 확 끼쳐옴. 
        마침내 몽골을 떠나왔음이 확연히 느껴짐.

 

"뿌우~". 
아침에 웬 기상나팔 소리가 들려 깨어났다. 
재이 언니는, 자리끼나 시계 따위를 놓아두는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팔뚝 하나쯤 떨어진 다른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언니도 들었어요? 
저게 무슨 소리유? 기상나팔인가… 중얼중얼거리듯 내뱉은 말에 
언니는 예의 그 소녀 같은 하이 톤의 웃음소리를 내며 말해준다.
기상나팔은... 아냐, 기차소리야. 새벽 내내 들리던 걸. 
아이고, 이런 곰팅이. 아무 소리도 못 듣고 또 깊이 잠들었나 보다.

몽골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진다. 
호텔 침대에서마저 침낭을 활용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까닭에
딱 굼벵이 꼼지락거리는 자세가 된다. 이렇게 좀 더 게으름을 피웠으면 좋겠다.
때마침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똑똑똑, 일어나세요. "
‘가이드 계의 꽃미남’ 안석현 팀장님이 방문마다 두드리며 일행들을 깨우는 눈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도 사람들은 쉬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서 잇몸이 닳도록 긴 시간 이를 닦던 
신경숙 소설 속의 여자처럼, 밥을 다 먹고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떠나는 시간을 한 없이 늦추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이란 결국 똑같은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모든 것에 애조 띤 가락을 부여한다. 
그런 눈으로 바라본 울란바타르 거리에는 물기 어린 회색빛이 어려 있는 듯 하다. 
여행은 나를 조금 더 감상적인 사람이 되게 한다. 
현실에서는 잠들어 있던 내 모든 세포들이 깨어나 
어떤 일이든 보다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반응하게 만든다.

돌아보니 ‘몽골 유학생들의 대부’ 이승욱 이사님이 조금이라도 더 
설명해 주시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분이다.
처음에는 다소 부실해 뵈는 나를 보고 딱 ‘5일짜리 여행객’이라며 놀리셨는데...
헤어질 때는 한국에 들어가 다시 한 번 보자시며 악수를 청하시기도 했다.

일행 하나가 전차 형태의 트롤리 버스를 발견했다.
동구권에서는 흔하게 발견되는 환경 친화적인 버스다.
‘아는만큼 보인다’더니,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저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선들의 용도를 끝내 이해하지 못할 뻔했다.

시내에서 공항까지는 의외로 멀지 않다. 
도심에서 겨우 30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런 국제 공항이 있었다니... 
도착할 때는 미처 몰랐지만 공항은 아이들의 놀이용 블록을 쌓아놓듯 자그마하다. 
그래도 이곳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처음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몽골 방문을 비롯하여 
몽골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비행기들의 터미널이다. 몽골의 허파인 셈이다.

차에서 내리니 서늘하게 느껴지는 찬 바람이 휘잉~ 하고 불어온다. 
마지막 날이라고 한 번도 입지 않은 반바지를 걸쳤는데 어째 으슬으슬하다. 
이러다 여지껏 잘 참았던 감기에 걸리겠다며  
가방을 열고 솜이 들어간 봄 점퍼를 도로 꺼내 입었다.
먼저 나와 있었던 M.A.T. 캠프의 손석원 사장님과 
여배우 이영애를 닮은 현지인 여사장 "침게" 씨가 우릴 배웅하러 나오셨다.

참, 지난 동행기에서 고려대 사학과 출신이라고 소개했던 손 사장님은
알고 보니 사학과가 아닌 사회학과를 졸업하셨단다. 
역사적인 지식에 워낙 해박하신데다 공교롭게도 그들 두 학과의 
발음마저 비슷해서 그냥 그렇게 믿어버린 게다. 
몽골에 관한 다른 사안들은 꼼꼼하게 재확인한다고 부산을 떨었으면서, 
정작 중요한 '사람'에 관한 정보를 놓칠 뻔했다. 
손 사장님께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 

침게 사장님은 탄력 넘치는 피부와 건강한 미모의 소유자로 
우리말 약간과 영어 회화까지 가능한 유능한 사업가다. 

계속 감탄하는 것이지만 몽골인들의 언어 감각은 천부적인 데가 있다.
내게도 참 친절하게 대해주셨는데, 내가 7월 20일 본진 여행에 안 온다니 
눈에 뜨이게 섭섭해 하신다. 그러면서 다음에 꼭 다시 오라고 신신당부다.
다음이라고? 그래 다음. 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까.

비행기 안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앉아 있던 한 외국인이 돌아보며 눈인사를 한다.
조금 전 면세점에서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모자와 가죽 보석함을 고르던 남자다. 
짧은 영어로 그의 선택을 도와 주었더니 그것이 고마웠던 모양이다.
공항의 이편과 저편으로 헤어지며 비행기 안에서 보자고 인사하더니
정말로 이렇게 마주치는구나. 역시나 세상은 요만하다.

내 옆자리는 아침지기 이하림 님이다. 어제 새벽, 저녁 식사까지 굶어가며 
PC방 점검을 마치고 돌아왔는데도 피곤한 기색이 하나도 없이 쌩쌩하다.
아직 긴장해 있는 탓이다. 책임감은 극단의 한계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해준다. 
뒷자리에서는 이경남 부사장님이 듣는 사람까지 몰입하게 하는 진지한 말투로 
나라 님과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하지만 저 속에 드문드문 
'확 깨는' 농담들이 섞여 있을 것임을 다 듣지 않고도 알 수 있다.
긴 자동차 이동에 저이의 오징어 땅콩 같은 농담들이 없었으면 참 서운했을 거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엄마"라고 부르고 싶어지던 사모님은
고도원 님 옆자리에 앉아 계신다. 재이 언니는 또 그 옆자리다.
공항에서까지 현지팀과 무슨 이야긴가를 나누시던 안 팀장님은 
티켓을 뒤늦게 따로 발급한 까닭에 외따로 떨어져 있다.
하지만 전혀 굴하지 않고 여전히 또릿또릿한 눈빛으로 스트레칭을 한다.
몽골의 초원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굳은 몸들을 풀 때 하던 바로 그 체조다.

그렇다. 나는 이곳에서 고작해야 여섯 날을 머물다 간다.
이곳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몽골의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벌써부터 내가 알고 있는 몽골이 진짜라고 우기고 싶어진다.
지금까지 들려드린 이야기 속에,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배어 들고 있었던 건 아닌지 문득 두려워졌다. 
내가 모르는 몽골이, 아직 저토록이나 많이 남아 있는데.

물 먹은 스폰지처럼 묵직해진 내 마음 속 배낭이 가벼워질 즈음,
다시 몽골에 가서 "고비" 사막과 "홉스굴" 호수를 보고 싶다.
너른 들판에 누워 쏟아지는 별들을 가슴으로 받아안고 싶다, 
여우털 모자를 뒤집어쓰고 악명 높은 몽골식 추위에도 떨어보고 싶다,
아니 무엇보다, 알콜 도수 40도의 칭기즈칸 보드카를 함께 비우며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경험들을 하고, 뜨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렇게 우리 민족의 원류를 찾고 조국의 미래를 밝히는 일들을 
끝까지 함께 하고 싶다.

저 멀리 우리 땅의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보인다.
소설가 배수아가 말했던 것처럼 '내 마음의 안테나'가 먼저 알아채고
온 몸에 짜르르한 진동을 보낸다. 지난 닷새가 아득해진다.
모든 여행은 이렇게 자신이 원래 있던 시간과 공간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던가. 

작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땅으로, 대륙의 딸이 돌아간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추억들과,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잘 때 생긴 짙푸른 멍 자국과, 
"울란 에르뗀(붉은 보배)"이라는 씩씩한 몽골 이름을 품고.

몽골어로 사랑한다는 말은 "비 참드 하이르테"라고 한다.
직역하면 '내 마음은 당신과 함께 있다'는 뜻이란다.
몽골에 있을 때도 나의 모든 판단과 감정은 
나침반의 N극처럼 이 곳을 기준으로 작동하였다.
내 마음은 언제나 이 땅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 속 지도에는, 여행을 떠나기 전 
선배가 내게 부탁했던대로 "몽골"이 함께 들어 있다. 

부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마음 속 지도에 몽골을 넣어 주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가끔씩은 떠올려 주시기를.

공항 안의 후텁지근한 공기로 인해 비로소 돌아왔음을 실감한다.
어제는 태풍이 왔다고 했다. 바야흐로 긴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끝)

*지금까지 "몽골에서 말타기" 답사 동행기를 아껴주신 
 <고도원의 아침편지> 가족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는 사람에게, 아니
 그것을 업(業)으로 여기며 살아가고자 하는 이에게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이들의 존재는 하느님이고 부처님일 겝니다. 
 부족한 제게 아침편지의 백만 독자들과의 만남은 
 그런 백만의 초월자 앞에 선 듯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보내주신 사랑과 격려, 기쁘게 새기고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비 참드 하이르테, 여러분. 오늘도 많이 웃으십시오.
                                             - 울란 에르뗀, 이진주 드림.   


*** 참고 자료: 7월 중 몽골 관련 행사 정보 ***

1. '몽골에서 말 타기' 본진 여행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기획한 야심찬 프로젝트.
7월 20일부터 12박 13일 동안 초원에서 말을 타며 호연지기를 기른다.
나약해진 심신을 다스리고 조국과 역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2. 재한 몽골인을 위한 나담 축제
7월 11일, 몽골의 독립혁명 기념일을 전후로 몽골 최대의 "나담" 축제가 펼쳐진다. 
이에 앞서 7월 6일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강변역 테크노마트 맞은편 공원에서
"재한 몽골인을 위한 나담 축제"를 통해, 우리 안의 몽골을 체험해 볼 수 있다.

3. 고비사막에서 펼쳐지는 한중일 환경 콘서트
7월 25일에서 28일까지 몽골 고비사막에서는
아무로 나미에, X-Japan 드러머 요시키, 리밍, 코코리 등과
한국의 윤도현밴드가 참가하는 한중일 환경 콘서트가 열린다.

글 / 이진주 (rubypear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