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촌 역시 생지옥이긴 마찬가지다. 이번 대참사로 1월 초 현재, 스리랑카에서만 사망 3만 여명,
실종 5500여명, 이재민 80만 여명이 생겼고 이들은 전국 800여개의 피난민 캠프에 수용돼 있었다.

불교나 힌두교사원, 교회나 성당 혹은 학교에 마련한 피난민 캠프에 적게는 수 백 명에서 많게는 수 천 명까지
모여 있었다. 눕기는커녕 앉기에도 비좁은 공간에 갓 태어난 아이부터 팔십 노인까지 섞여 지냈다. 구사일생으로
살았다는 생후 10일 된 아기는 심한 설사를 하고 있었고, 탈진한 팔십 노인은 빨래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좁은
공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울음소리와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애기들은 아파서 울고, 어른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통곡했다. 4명의 자녀와 대피하다가 파도에 휩쓸려 바로 눈앞에서 아이들이 모두 떠내려가는 걸
보았다는 아버지. 죽은 아이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오열하다가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그러나 피난민 캠프에서도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아이들이 우리 주변을 빽빽하게 둘러싸며
이름이 뭐냐, 어디서 왔느냐, 짧은 영어로 파워 인터뷰를 한다. 우리가 대답하면, 뭐가 좋은지 하얀 이를 다
드러내고 박수까지 치며 깔깔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반갑던지. 저렇게 웃는 동안만이라도 지금의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집단 수용소의 위생시설을 살펴보면 저 아이들의 저런 웃음이 오래 갈 것 같지가 않다. 씻을 물은
물론 식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4,000명의 재난민이 있는 사원에 화장실이라곤 단 6개.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
변을 보고, 토하고 쓰레기를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이틀간 폭우가 쏟아져 캠프 전체에 오물이 둥둥 떠다녔다.

이렇게 불결한 집단생활에는 반드시 전염병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캠프촌 관계자들은 설사. 피부병. 콜레라,
이질 등 수인성 전염병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다른 긴급구호현장의 경험으로는 대형 난민촌에는 반드시
파상풍과 홍역. 간염 등이 돌기 마련이다. 이렇게 더운 나라는 말라리아도 큰 문제다.



아마추어인 내가 봐도 푹푹 찌는 더운 날씨에, 우기에, 공동식기 사용에, 위생시설이 엉망인 이곳에서 수 주일
내로 전염병이 창궐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렇게 되면 지진 때보다 훨씬 많은 인명 피해가 날 것이라니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의 원장 및 보건당국자들을 만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기초의약품과 전염병 방지를
할 수 있는 의료진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그때만 해도 많은 구호단체들이 스리랑카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남서부 지방에 지원이 몰려있었기 때문에 이곳까지 아직 구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 분야라면 우리 단체에서 즉각 지원이 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한국사무실에 연락해서, 그 동안의 모금액 중
2억 5000만원을 긴급 지원해 긴급구호 물자 배분과 식수 및 위생사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더불어 의약품과
의료진 급파를 부탁했다. 그 결과 1월 5일, 한림대 의료원으로 구성된 7명의 의료진이 자체적으로 준비한
의약품과 한화에서 기증받은 의료품을 가지고 동부 트린코말리에 도착했다.

내가 현장해서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국제요원으로서는 물자 담당으로 긴급물자 관리 및 배분을
담당하지만, 한국 긴급구호팀장으로는 현장에서 무엇이 가장 시급하며, 한국에서 보내는 한정된 인원과
자원으로서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살펴보고 수행하는 일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고안해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가장 효과 높은 긴급구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긴급구호는 ‘독립군’의 영역이 아니라 철저히 ‘연합군’의 영역이다. 한국 월드비전 혹은
긴급구호팀장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절대로 아니라는 말이다.


- 글/사진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동부 트린코말리 지역에서 의료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한림대 의료원.





아이들의 병을 염려하는 부모들로 소아과는 항상 붐볐다.




병실이 모자라 병원 복도에 나앉은 환자들.
하지만 이재민 대피소의 수많은 사람들이 진료를 받아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피난민 캠프 스리랑카 난민에서 배고픔에 지쳐 잠든 어린이들.
태어난 지 3일 된 갓난 아기부터 80을 훌쩍 넘긴 노인까지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은 전염병의 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아이 뒤로 이 아이는 난민촌 생활을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한비야의 긴급구호일지, 다른 페이지 계속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