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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 셋째날은 이번 방북 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정성수액공장' 준공식이
있는 날이었다.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이어서였는지 일찍부터 잠이 깼다.
북에서 맞는 두번째 아침이었다.

이날은 수액공장 준공식 말고도 다른 일정이 많았다.
그 때문에 방문단 모두 일찍부터 서둘렀고, 제일 먼저 '동명왕릉'에 다다랐다.
평양에서 자동차로 30여분 정도 소요되는 곳에 위치한 동명왕릉은,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이면 거의 빼놓지 않고 둘러보는 관광지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만큼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두루 갖춘 잘 꾸며진 왕릉이었다.

어렸을 적에 배운 역사, 아니 신화로만 알고 있었던 고구려 건국의 주인공
고주몽의 무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우리 남쪽의 웬만한 문화 유적지는 학창 시절부터 소풍이다, 수학여행이다 해서 많이
둘러본 편이지만, 북쪽에 있는 문화유산들을 접할 기회는 사실상 불가능 했기 때문에
이번 동명왕릉 방문은 그저 구경으로만 그치지 않고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더욱이 왕릉 뒤편 숲속에 자리잡아 있는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무덤'을
보았을 때는 그 감개무량함이 더더욱 컸다. 마치 내가 전설의 고향, 동화의 그림 속에
빠져든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동명왕릉을 접하며 느꼈던 생각과 함께
마음 한 켠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반도 땅, 그나마 반동가리로 갈라져 제대로 오고 가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유구한 5천년 민족 역사의 흔적이나 유물들마저 반 토막이나
한 쪽에서는 끝내 근접할 수 없는 금단의 장소가 되고 말았구나...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민족의 역사와 신화의 뿌리 속에 웅대한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동명왕릉'도,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무덤'도 언제든 스스럼없이
소풍처럼 찾아와 함께 보고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런 염원이 크면 클수록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돌아가야 하는 것이 바로 통일의 길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일환으로 이번 방문의 가장 중요한 일정인 '정성수액공장' 은 그 지렛대 역할을
해주기에 충분했다. 평양시내에서 통일로를 따라 조금 달리면 만날 수 있는
'3대헌장기념탑'을 거쳐 도착한 '정성수액공장'. 그 입구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북한 여성들이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지극한 환대를 받으며 방문단이
공장 마당에 들어섰고, 곧이어 준공식이 시작되었다.

'정성수액공장'이란 우리가 흔히 링거액, 혹은 포도당 주사로 알고 있는
수액제를 만드는 공장이다.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는 생산 시설이 없어 맥주병을 이용해 주사를 맞는 등
큰 어려움을 겪어 왔었다고 한다.

북한은 지금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의료품들이라 할 수 있다. 그 심각성을 인식한 남쪽의 '기아대책'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북쪽의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그리고 정성제약연구소와
함께 2003년 3월부터 시작해서 2년여에 걸친 공사를 끝내고 2005년 6월 9일,
드디어 '역사적인' 준공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테이프 커팅과 현판 걸기 등 의례적인 준공식 행사를 모두 마치고,
공장 안팎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갖추어진 시설들이
마음을 조금 놓이게 했다. '일양제약'에서 오래도록 근무하시다가 퇴임 후 이곳 북쪽에
와서 자원봉사로 기술지원을 하고 계신 신준용님이 함께 돌며 공장내부를 두루
설명해주었다. "남한의 수액공장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첨단 시설을 두루 갖춘 이 공장에서는 연간 5백만병 이상의 포도당과
생리식염수를 생산해 환자들에게 공급할 예정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수액제가 북한의 열악한 보건의료 상황을 개선하는 데
크나큰 기여를 할 것은 물론, 남과 북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정성과 노력을
함께 기울여 만든 공장이니만큼 더 나아가서는 남북 협력과 화해의 길을 터주는
든든한 다리가 되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준공식을 무사히 마치고 오후에 들른 곳은,
그 유명한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이었다. '소년궁전'은
서울의 '예술의 전당' 내지는 '세종문화회관'을 생각나게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외관에서 풍기는 냄새에 불과했고,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펴보면서 그곳이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별천지'임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안내자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각각의 방을 둘러보게 되었다. 피아노방, 아코디언방, 체조방, 노래방, 기악방, 소묘방,
동양화방, 수예방, 중창방, 수영반등에서 북한 어린이들이 '방과 후에 자신의 희망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방들을 거의 다 돌 무렵에는 북한 아이들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입이 벌어져 있는
나와 방문단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간혹 TV에서 '북한 특집'등을 다룰 때, 북한 어린 아이들이 무대에 나와
한결같이 과장된 표정이며 몸짓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인위적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별다른 감흥 없이 흥미롭게만 바라보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 본
북한 아이들의 솜씨는 가히 놀랄 만한 것이었다.

사흘에 걸쳐 하루 종일 걷고 서고 움직이느라, 매우 지치고 피곤한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방을 돌면서 기운이 내 몸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마다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특기를 유감없이,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열정적으로 발휘하는
아이들에게서 에너지를 얻었는지 나머지 방들은 날아갈 듯 돌아보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안내된 공연장의 커다란 무대를 앞에 두고 앉았을 때는 오히려 언제
피곤했었냐는 듯 눈이 말똥말똥해지며 묘한 기대와 흥분감마저 안겨 주었다.

무대 위 공연은 각 방을 돌면서 보았던 모든 아이들의 특기를
한 자리에 집대성해놓은 것이었다. 연습이 아닌 실제 공연에 임하는 아이들의
노래와 춤, 악기를 다루는 실력 등은 가히 예술이라 할 수 있었다. 반복 훈련으로
숙련된 아이들의 '예술의 경지'에 이른 공연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면서 경탄하고,
박수 치며 환호성을 지르다가, 문득문득 아이들을 이런 경지에까지 오르게 한
북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궁금증이 머릿속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궁긍증과 함께 북한 아이들을 통해서 발견한 것은 역시나 '아이들의 순수함'이었다.
반복 교육의 효과라고만은 볼 수 없는 아이들의 배움의 열정이 순수한 눈빛을 통해
내게 전달되어 왔다. 또 다른 하나는, 그들에게는 이미 체화되어 있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 것이 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남한의 아이들의 경우, 우리 것을 몸에 체화시키기도 전에 너무 빨리, 너무 쉽게
외국의 문화들에 동화되어 '우리 것'을 송두리째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걱정이 들곤 했었다. 잊혀져 가고 있던 우리네 민요와 악기, 춤들이 북녘 아이들을
통해 재현되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남쪽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북쪽에서는 볼 수 있고,
북에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남쪽에서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그 상이한 현실을
방북 사흘째가 되어가니 더욱 실감나게 느끼게 되었다.

글 / 아침지기 윤나라 실장
사진 / 윤나라 실장, 최동훈 팀장


 

동명왕릉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평양-원산간 도로변 농지.
주민들이 한창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큰 길 가의 염소떼.
염소를 몰고 가던 두 어린이가 버스가 지나가자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새참(?). 밭일을 하다가 새참을 드는지 북한 주민 몇명이 길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다.



동명왕릉 입구.
동명왕릉은 평양 중심에서 동남쪽 2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북측 여성 안내원들이 입구에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방북단 일행이 동명왕릉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동명왕릉 능문(陵門).



'동명왕릉 개건기념비' 앞에서 북측 안내원이 동명왕릉 개건의 의미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동명왕릉 개건기념비'에 적힌 글을 올려다 보고 있는 방북단.



동명왕릉 우측으로 문관상, 좌측으로 무관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큰 칼, 두터운 갑옷을 지닌 무관상의 모습에서 고구려 장수들의
용맹이 느껴지는 듯 하다. 고구려 건국을 도왔던
부분노, 부위염, 무골, 묵거가 차례로 서있다.



왕릉 옆 제당 내부에 재연된 고주몽 벽화. 아래 나무판에는 '고주몽,
어린시절부터 활쏘기에서 뛰어나다' 라고 적혀 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개선하고 있는 동명왕의 모습.



고구려를 창건한 동명왕의 그림이 관람객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명왕릉 뒷쪽의 솔밭길. 동명왕릉 주변에는
울창한 솔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주변에는 다른 고분들도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로 잘 알려져 있는 '온달 장군과 평원왕의 공주의 묘' 이다.



왕릉 솔밭 그늘에서 풍경화를 그리고 있는 만수대 창작사 소속 미술학도들.
그림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20달러를 주면 이들의 그림을 살 수 있다.



왕릉과 소나무.
동명왕릉을 향해 고개를 숙이면서 자라다가
절을 하는 것처럼 구부러졌다고 한다.
수액공장준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