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중앙아시아 여행의 마지막 나라는 타지키스탄이었다.
우리는 육로를 통해 이동하여 우즈베키스탄의 국경을 걸어서 타지키스탄으로 들어갔는데,
이곳에서 나는 또 하나의 살아있는 기적을 만날 수 있었다.

타지키스탄도 키르키즈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과 마찬가지로 열악하긴 매한가지였다.
그 상황이나 어려움이 두 나라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나라였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온 나라의 전기가 밤 10시면 끊긴다는 것이다. 아침에 3~4시간, 저녁에 3~4시간만 잠깐씩 전기가 들어오고
나머지 시간에는 전기가 끊겨버렸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추운 겨울, 따뜻한 난방이 가장 필요한 밤이
되면 전기가 나가버리는 이 열악한 상황을 보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물이 안나오는 아파트.
그래도 아파트에 살 정도라면 그나마 좀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 짐작했다가 얼마 안가 그것도
나의 큰 오산이었임을 알게 되었다. 그곳의 아파트에는 거의가 물이 나오지 않고 있어 멀리서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사용하고 있었다. 전기도 물도 없는 환경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울지, 내 머리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공기처럼, 없어선 안될 것들인데도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가끔씩 잃어버리는 물과 전기... 그 소중함을 타지키스탄에서의 이틀동안 뼈속
깊이 체험 할 수 있었던 나라였다.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나라 타지키스탄에서 또 한 분의 특별한
사람을 만났다. 이종분 목사님이었다. 14년전 이곳 타지키스탄에 들어와 4년정도 이 나라의 수도인
두샨베에서 활동하다가, 10년전부터는 이곳 '후잔'시에 정착하여 '기적'같은 많은 일들을 이루어가고
있는 여자분이었다. 목소리부터가 우렁찬 남다른 카리스마에 넘치는 에너지가 엄청난 분이셨다.

타지키스탄에서 맨 처음 들른 곳은 후잔시의 '선민학교'학교였다. 이종분님이 세운 사립학교로,
타지키스탄을 통틀어 최초의 사립학교이자 최일류 학교였다. 1997년 세워져 현재까지 7회 졸업생을
배출(중앙아시아의 학교들은 11학년까지로 초등, 중등, 고등 세 과정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했는데,
1회부터 7회까지의 졸업생 모두가 대학에 진학했고,국가에서 실시하는 '올림피아 경시대회'에서도
계속해서 1등을 차지하는 학교가 되었다고 한다.

국경까지 마중나왔던 이종분님과 함께 학교 건물에 도착하니, 가는 곳마다 환영 인사를 하기 위해
나온 학생들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우리 일행을 반겼다.

이곳 선민학교는 최초의 사립학교라는 것 말고도 남다른 의미를 던져주고 있었다.
수업료를 받아 운영이 될 만큼 자립도가 매우 뛰어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자랑은 교사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했다는 점이었다. 한달에 우리 돈으로 25,000원 정도의 월급을, 그것도 3개월에 한번이나
받을까말까한게 그곳 교사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교 교사들이 이런 어려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교사직을 포기하고 야채나 물건을 파는 등 생업을 전환해야만 했었다. 그런 교사들에게
이곳 선민학교는 최고의 자랑스런 일터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파격적인 월급을 주는 정책을 취함으로써
최고 엘리트 교사들을 유치할 수 있었고, 그렇게 선발된 교사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녹여내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열정과 의지가 충만해 있었다. 이 선민학교는 뒤늦게 생기고 있는 여러 사립학교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어 타지키스탄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두번째 방문한 곳은 '치카레스카 선민 종합병원'이었다.
이곳 역시 이종분님이 세운 병원으로 직원만도 500명이 넘는 큰 병원이었다.
공산정권하에서 무료로 운영되는 병원의 열악한 의료 서비스에만 의지하고 있던 이 나라 사람들을 위해
신체 건강뿐 아니라 치료 환경 개선에 앞장서고 있었고, 치료 현장에서는 대화로서 "나는 할수 있다"는
심리적인 자립심까지 심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료진료,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유료진료를 하는 방식으로 병원이 운영되고 있었다. 선민학교와 마찬가지로
이곳 병원에서도 의사들에게 가장 많은 급료를 제공하여 현지의 최고 엘리트 의사들이
모여있다시피 했다.

이종분님은 우리에게 목사 본연의 모습에서도 놀라움을 보여주었다.
마침 타지키스탄에 도착한 다음날이 일요일이어서 우리는 함께 예배를 드리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가 개척한 17개의 교회가 연합으로 드리는 예배인데 반해 교회가 너무 좁아 시의 문화센터를 따로
빌렸는데, 1500여명이 넘는 현지 주민들이 모여들어 실내가 발디딜 틈이 없었다. 처음 그 엄청난
인파에도 놀랐는데, 예배시작전 현지 사람으로 구성된 찬양팀이 나와 대부분의 찬송을 한국말로
하는 것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예배보는 도중에도 전기가 나가 놀랐고, 함께 동행한 기아대책
이사이신 최대원 목사님이 그날 예배의 설교를 맡았는데 듣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할렐루야'로
화답하며 은혜가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음에 또 놀랐다.

심신이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눈과 가슴을 열어주며, 따뜻한 손길로 작은 보탬을 주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것들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학교와 병원, 그리고 이슬람문화권의 나라에서
교회를 운영하면서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이종분님의 순수성을
곡해하고, 발을 묶고, 장애물을 치는 요소들이 도처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어렵기만 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종분님은 그 특유의 카리스마와 지혜로운 순발력, 그리고 기도로
그 일들을 혼자 몸으로 감당해내며 감동과 기적을 이뤄가고 있었다.

타지키스탄의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교육의 중요성, 그리고 병든 사람들의 좋은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는 이종분님은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혼자서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전혀 다른 곳에 정착해 14년이상을 살아오면서 받았을 무수한 고통과 어려움은 간간이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털어놓는 대화를 통해 나는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모처럼 고국
손님을 만나 한국말로 소통하는 것이 그동안 막혔던 가슴을 뚫어주었다며 어린 아이처럼 들떠하기도
했다. 오며가며 기회가 될 때마다 쉬지 않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그 분의 그
강한 카리스마와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게 만드는 강인함 속에 숨어있던 외롭고 힘든 속모습이
순간 순간 엿보여 마음이 싸아하게 아파오기도 했다.

타지키스탄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우즈베키스탄 국경을 걸어서 넘어갈 때였다.
단 며칠이었지만 그리운 고국의 말로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다 떠나버리고 다시
혼자가 되어야만 하는, 그리고 그곳에서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을 함께 느껴주고, 누구도
해주지 않던 진심어린 조언까지 선물해준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는지 한사람씩
작별 인사를 하며 "안아봐도 되냐"고 물으셨다. 난 그때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가슴은 울고 있던
한 여자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너무 강하게만 보였던 한 위대한 사람의 여리고 약한 모습을...

국경을 넘어 다시 우즈벡으로 들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철창을 붙잡고
한없이 바라보기만 하던 이종분 목사님의 얼굴 표정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그 먼발치 거리에서 거짓말처럼 그 분의 눈에 주르륵 흐르고 있는 눈물을 보았다.

아직도 그 분의 그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해, 이글을 쓰면서도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일곱번째 여행스케치는 수요일에 계속 됩니다)

- 글/사진 아침지기 윤나라








타지키스탄 선민학교. 최초의 사립학교로 매우 우수한 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전통 환영식. 학교에 들어서자 전통복장을 입은 학생들이 환영식을 하고 있다.
들어오는 손님들은 빵을 조금 뜯어 먹어야만 한다.
빵을 뜯고 있는 고도원 홍보대사.




환영 행렬. 가는 길목마다 학생들이 나와서 우리 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있다.



저학년 아이들. 노란 햇병아리같은 어린 학생들이 수업하고 있는 반을 참관했다.



고학년 아이들. 우리나라 고등학생에 해당하는 아이들.
고도원 홍보대사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직접 그린 교재. 가까이서 보니, 손으로 직접 그리고 쓴 것이었다.
선생님들의 열정이 엿보인다.




환영 공연. 아이들이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공연을 펼쳐보이고 있다.



작은 댄서들. 이쁘게 차려입고 나와서 열심히 연습한 춤을 선보이고 있다.



선민학교 선생님들. 영어로, 러시아어로, 타지키스탄어로 인사를 하시는 선생님들.
이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을 매우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셨다.




이종분 목사님과 함께. 선민학교 정문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고도원, 이종분, 최대원, 조옥순님.




타지키스탄 시내. 사람이며 자동차가 뒤섞여 혼란스러운 느낌을 주는 도로.



만원 버스. 교통수단이 넉넉하지 않아
한번 움직일때마다 타고 내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승객이 많다.




치카레스카 선민 종합병원.
이 지역에서 가장 최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으로 무료 진료도 하고 있다.




환영하는 병원직원들. 손님들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꽃을 준비해서 일렬로 서 있다.



고도원님에게 꽃을 안겨주고 있는 병원 직원들.



치카레스카 병원 의사들. 병원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엘리트 의사들. 선민병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의사의 자존심을 되찾았다면서 고마워했다.
맨 오른쪽은 이 병원 원장.




병원 접수 창고. 우리나라 병원과 비슷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예배 전 찬양시간.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다.




예배에 앞서 타지키스탄의 아이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와 우리의 전통춤인 꼭두각시 춤을 추고 있다.




현지인들이 많이 모여 발디딜 틈이 없다.




예배 도중 전기가 나갔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찬양을 하는 찬양팀.
이곳에서는 시도때도 없이 정전이 되곤 한다.





감동의 눈물. 예배중에 눈물을 보이는 타지키스탄 사람들.




감사 인사. 고도원 홍보대사가 참석자들에게 인삿말을 하고 있다.




타지키스탄의 척박한 땅에 들어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이종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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