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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아 간 곳 중에 우간다 소로티 지역의 '오피야이' 마을이 있었다.
수도 캄팔라에서 북동쪽으로 350km 떨어진 곳으로, 우간다 도착 첫날부터 우리 일행을 안내하고
통역도 맡은 기아대책기구 현지 책임자인 이상훈 선교사가 2005년부터 새로이
CDP(Child Development Program)를 진행하게 된 마을이었다.

일행이 머물던 쿠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이상을 달려 이 마을에 들어서니 마침 주일이어서였는지
마을 사람들이 동네 한 켠에 세워진 작은 교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였지만
많은 주민들이 우리가 차에서 내리는 곳에서부터 호기심 반, 반가움 반의 표정으로 우리를 반겼다.
환호성을 지르며 반겨주는 마을 사람들 중에는 유독 아이들과 여자들이 많았다.

우리 일행에 대한 소개와 함께 짧지만 의미 있는 강연 시간도 있었고, 마을 지도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소로티의 오피야이 마을에는 약 만 명 가량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 중 2,300여명, 곧 전체 주민의 1/4 가량이 18세 미만의 어린이이다. 잦은 반군의 활동과
농업의 위축으로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으로, 초등학교가 10곳 있어 90% 가량의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등록하고 있으나 실제로 졸업하는 어린이는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3%의 어린이만이 중학교에 진학하고 있다고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어린이의 23%, 곧 1/4 정도가 만성적 영양 부족 상태이며, 5% 이상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고 했다. 근원적인 물 부족에 그나마 오염이 심해 항상 '수인성 질병'에 걸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 있었다.

바로 이 곳에서 기아대책기구가 이상훈 선교사님을 내세워 2005년부터 새롭게 어린이 CDP를 시작했다.
현재 한국의 두 교회의 성도들이 300명의 어린이와 CDP 결연을 맺어 돕고 있고,
해마다 100명씩 후원 아동을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이상훈 선교사는 이곳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CDP활동은 물론
마을 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위해서도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만성적으로 만연하고 있는
오래되고도 잘못된 성생활 문화를 고쳐나가기 위해서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었다.

최근 어느 신문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제2회 에이즈 기금 모금
자선 콘서트를 개최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만델라는 “오늘날 아프리카에는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에이즈라는 또 다른 로벤섬에서 홀로 희망을 잃고 투쟁하고 있다”며
“아프리카의 여성 에이즈환자 및 HIV(에이즈바이러스) 보균자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메세지를 전했고,
공연에 참가했던 유리드믹스의 보컬 애니 레녹스는 “에이즈로 인해 아시아 지진 참사로 희생된 인명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매년 숨져간다”며 “에이즈는 또 다른 유형의 인종학살”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적혀 있었다.

만델라 자신도 올해 초 에이즈로 큰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의미 있는 행사로 마음을 달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의 에이즈 문제는 생각 외로 정말 심각했다.

내가 다녀왔던 우간다의 경우, 1992년에 인구의 25%~30%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전 세계 모든 국가 가운데 에이즈 감염 비율이가장 높은 불명예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이디아민의 9년간의 폭정과 20년에 걸친 제재 받지 않은 테러, 살인, 부족 전쟁, 부정부패 등의 참화로
국가의 기본 인프라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대다수 국민들의 삶은 그야말로
더 이상은 내려갈 곳도 없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성교육이라는 것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문제의 심각성도
인지하지 못한 채 관행적으로 본능적으로만 생활을 하다 보니
악순환만 거듭되고 있는 형국이었다.

우간다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는 대체로 15살 전후에 남녀간 성교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결혼 연령도 빨라 15~18사이에 아이를 낳는 여자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에이즈 잠복기는 10년, 그래서 한참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청년층들이 25살 전후에
이미 에이즈에 노출되어, 활동적인 경제 인구 가운데 많은 수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비극을
겪고 있는 것이다. 국가 발전에 막대한 손실이며 사회 경제의 전 분야가 실로
엄청난 붕괴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프리카 전역의 에이즈 분포도를 보면 큰 도로와 국경 지대에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확산의 주범으로는 주로 트럭 운전사들과 군인들이라는 분석도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런 트럭 운전사들과 군인들이 관계를 가지게 되는 상대였다. 큰 도로와 국경지대에 사는 남자 중
상당수가 자기 아내, 또는 며느리들에게 호객행위를 시킨다는 것이었다.

물론 돈 때문이었다. 가진 것도 없고, 일할 거리도 없으며, 배가 고픈 사람들이 돈벌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행위였던 것이다. 트럭운전사와 군인들을 통해 도로를 따라 번지던 에이즈가
점점 도로를 벗어나 마을로 마을로 침투하기 시작했고, 이제 정말 더 이상은
방관할 수 없는 위험한 지경에 놓였다고 한다.

에이즈를 옮기는 경위가 또 한가지 있다.
아프리카 유목민의 전통에 따라 에이즈로 죽은 형제의 자식들은 남아있는 형제들이 모두 맡아
키우게 되는데, 이때는 남겨진 자식뿐만 아니라 형의 부인, 동생의 부인까지도 함께 취하게 된다.
바로 거기서 또 다른 에이즈의 확산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건강한 여자가 에이즈에 걸릴 확률이 1/76이고, 건강한 남자가 에이즈에 걸릴 확률이
1/1200인데, 우간다의 경우는 이런 통계마저 무의미한 것이 되고 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의 호소처럼
많은 우간다 여성들이 희망도 잃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에이즈는 단순히 여성 자신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데서 그 심각함이
하늘을 찌른다. 에이즈가 걸린 여성이 임신을 했을 경우 더욱 끔찍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임신한 여성이 자기 뱃속의 아기에게 태반을 통해 에이즈를 옮기고, 또 출산 때의 혈액으로 인해
에이즈를 옮기며, 출산 후에는 모유를 통해 아기의 몸 속으로 에이즈 바이러스를 옮기게 된다.

신생아의 에이즈 잠복기간은 6~12개월, 성인에 비해서 현저하게 짧다.
아이의 경우에는 증상 또한 심하여 단 기간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에이즈로 인한 아프리카 5세 이하 아이들의 사망률이 1000명중 152명이라는 수치는
말라리아나 아사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에이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번 방문에서 "우간다 인구의 1/3이 에이즈로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더 심각한 것은 전쟁이 80만 명의 고아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에이즈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고아를
만들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 많은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고통 받고 죽어가야만 하는 현실을
생각하니 에이즈가 단순하게 육체적인 병이라 말하기엔 너무 무서운 전 인류적, 문화적 형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므로 그 해결 역시 한 개인이나 국가가 아닌, 전 인류가 달라붙어
풀어가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느 곳에서 살든 아이들이 이 가공할 인류적 형벌에 노출되고 방치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은
아프리카에만 해당되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우리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끔찍한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한 가닥 희망이라면 기아대책 등을 비롯한 여러 국제 기구와 많은 교회들이
'우간다 에이즈 프로젝트'라는 것을 펼쳐나가고, 그에 상응하는 상당한 효과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캄팔라(Kampala) 지역에서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그 활동 범위를 계속 넓혀나가면서
5~10년 안에 에이즈가 없는 세대를 육성하고 형성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가 실행된 뒤 실제로
우간다에서의 에이즈 발병률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방문한 오피야이 마을은 하나의 실험장이자 시금석이기도 했다.
우간다의 그 많은 어려운 지역 중에서 그나마 빨리 이런 의미 있는 일을 진행하는 단체와 만났으니
행운이라면 행운이기도 했다. 그들이 현재의 어려움을 하루라도 빨리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을 낚아채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곳의 아이들에게 불안과 어둠과 아픔을 안겨주는 그 무서운 현실로부터
좀 더 시급하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은 무엇보다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의 전달이 아닐까 하고...

기아대책기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CDP라는 '1 대 1 결연 채널(한 아이에게 한 달에 2만원씩 후원)'이
가까이에 있어, 많은 분들이 그것을 통해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나 하나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너무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라는 든든한 단어가 있지 않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후원이 모여 50명의 아이들이,
나아가서는 500명의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밝은 미소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그 아이의 행복이고, '우리'의 행복이며, 나의 행복이 아닐까.
더불어 함께 나누는 행복이야말로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인류 공생의 커다란 가치가 아닐까?


- 글/사진 아침지기 윤나라




소로티 마을.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350km 떨어진 곳이다. 매우 가난한 동네였지만
우리의 시골 동네처럼 평화롭고 맑은 정취가 느껴져 정감이 갔다.



손님 맞이. 마을을 방문하는 외국 손님들을 위해
소로티 주민들이 일찍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뒷편의 초가집은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교회 건물 한 귀퉁이에 동네 주민들이 다들 모여 외국 손님들과 만나고 있다.



주민들과의 대화 시간.
이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케냐의 기아대책기구 직원이
손님들을 한명 한명 소개하고 있다.



고도원 홍보대사의 미니 강연.
"우간다의 미래는 여러분 아이들에게 있습니다. 꿈과 희망을 가지세요."
가운데 체크무늬 남방이 이상훈 선교사.



미니 강연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 '두건족'.
저마다 형형색색의 두건을 두른 여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만남의 자리에는 갓난 아기부터 노인들까지 모였으나,
아이들과 여자들이 훨씬 많은 편이었다.




주거 공간. 흙벽돌에 나무가지로 엮어 지붕을 올렸고
집집마다 한결같이 문이 달려있지 않아 열린 그대로였다.



부잣집(?).
집으로 쓰고 있는 움막 양쪽에 세워진 두 개의 둥그런 구조물이 그나마 있는
귀한 곡식들을 썩지 않도록 보관하는 곳이다.



어느 집에 가나 그 안에는 양, 닭 등 가축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인지 동물이 사는 곳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먹구름.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멀리서부터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한 사나이를 중심으로 비가 내리는 곳과 맑은 하늘이 대비를 이룬다.



나무 아래에서.
두번째 방문한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커다란 망고 나무 아래 모여 있었다.
저 멀리에는 비가 내리고 있지만, 이곳은 아직 맑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있다.



두번째 미니 강연.
많은 소로티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 고도원 홍보대사.



환호성. 강연이 끝나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이야기를 듣는 주민들의 자세가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이런 만남이 이 곳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스스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
나중에 저 아이가 자랐을 땐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길...




손바닥만한 갓난 아이.
세계 어디를 가든 아기들은 한결같이 천사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업은 아이가 카메라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모두들 외국 손님과의 만남에 열중하고 있는데
한 소녀가 원숭이처럼 나무에 매달려 놀고 있다.




맨발의 아이들. 옷을 잘 입은 아이나 벗은 아이나 맨발이긴 마찬가지다.




동네 어른들. 만남의 자리가 끝난 뒤 동네 아저씨들이 잠시 포즈를 취했다.
우간다 남자들의 평균수명은 35세~40세라고 한다.



어딜 가서 누구와 만났든 서로 헤어질 때는 아쉬움이 크다.



긴 배웅 행렬. 외국 손님들이 탄 차를 계속 따르며 배웅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아득하게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정에 넘쳤고, 마음은 따뜻하고 넉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