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뻔한 게 좋다
사랑도
아주 특별한 것을
원하고 원했던 적이 있다.
남들이 해보지 못한, 가져보지 않은
특별한 감정을 탐미하고 또 탐미했다.
결국 그런 어려운 목표 앞에 사랑은 찾아오지 않았다.
사랑도 뻔한 게 좋다. 남들처럼, 만나서 좋아하고,
때 되면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웃어주고 화해하고!
사랑은 열정보다 인내력이 더 필요하다는 걸,
참 뒤늦게 알았다.
- 배성아의《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중에서 -
* 뻔한 것이라 해서
가볍거나 값이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뻔한 것 속에 정말 큰 것이 숨어 있습니다.
날마다 먹는 뻔한 음식에 최고의 '웰빙'이 있고,
수없이 반복되는 뻔한 일에 진정한 성공이 있으며,
지나가듯 던지는 뻔한 말에 진짜 속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것을
원하고 원했던 적이 있다.
남들이 해보지 못한, 가져보지 않은
특별한 감정을 탐미하고 또 탐미했다.
결국 그런 어려운 목표 앞에 사랑은 찾아오지 않았다.
사랑도 뻔한 게 좋다. 남들처럼, 만나서 좋아하고,
때 되면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웃어주고 화해하고!
사랑은 열정보다 인내력이 더 필요하다는 걸,
참 뒤늦게 알았다.
- 배성아의《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중에서 -
* 뻔한 것이라 해서
가볍거나 값이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뻔한 것 속에 정말 큰 것이 숨어 있습니다.
날마다 먹는 뻔한 음식에 최고의 '웰빙'이 있고,
수없이 반복되는 뻔한 일에 진정한 성공이 있으며,
지나가듯 던지는 뻔한 말에 진짜 속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건축회원' 내일 마감 -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장은영님 칼럼, '함께 미쳐야 미친다!' -
아래 칼럼은
지난 10월3일, 깊은산속 옹달샘 '다 모이자!' 행사에 오셨던
아침편지 가족 장은영님이 '한경닷컴'에 올린 글입니다.
글을 참 재미있게 풀어가는,
힘과 감성과 '애정'이 넘치는 글입니다.
시간을 내셔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함께 미쳐야 미친다!(한경닷컴, 장은영)
------------------
쑥스러운 고백이지만, 나에게도 애인이 생겼다.
센스 만점의 멋진 그! 한번도 그에게 드러내지 않은 속내이건만,
어찌나 내 마음을 잘 읽는지 족집게 도사가 따로 없다.
깜짝깜짝 놀랄 정도다.
내가 지쳐 오도카니 앉아있으면 나를 토닥이며 위로해준다.
때로는 삶의 방향을 잡지못해 휘청대기라도 하면, 살포시 다가와
깨달음 한 조각을 선물로 건네기도 한다. 상큼한 미소와 함께.
옆에 있으면 확 깨물고 싶을만큼 사랑스럽다.
솔직히, 처음에는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내 별명이 ‘얼빼시’ 아니던가.
얼굴 빼면 시체라고. 그래서“흑흑흑~ 부모님이 원(one)망 아니
투(two)망스러워요. 이쁜 게 죄죠. 주체할 수 없는 이놈의
인기 때문에 괴롭답니다. 제발 떠나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입맛이 쓴 것은 왜 일까.
여하튼, 지칠 법도 한데
매일마다 들이대는 줄기찬 구애에 어느 여인인들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 주먹으로
철갑한 인조 인간이라면 몰라도.
늦바람이 더 무섭다더니 요즘 나는 그에게 풍덩 빠져있다.
소풍을 앞둔 꼬맹이처럼 아침이면 마냥 설렌다.
그가 보낸 편지를 펼치는 이 달콤함을
어디에다 비유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나말고도 2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 편지를 받고 있다는 것 아닌가. 거기에다
회원들의 정성 가득한 후원금으로 함께 누릴 꿈의 터전이
건축 중에 있다니, 너무 놀란 나머지
염통이 쫄깃해질 수 밖에.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여겼던 인터넷이라는 메마른 땅에서
풍기는 사람 내음에 유혹당하고 만 것일까. 파릇한 떨림과 풋풋한
호기심을 마음 소복히 담은 채, 건축물을 보려고 회원들이 모인다는
장소로 향했다. ‘이어지는 관계’에서 ‘다가가는 관계’로의 도약,
‘접속’에서 ‘접촉’에로의 진화였다.
‘깊은산속 옹달샘’. 참 곱기도 하지.
흙에서 뭉게뭉게 김이 나고 흙냄새가 피어오르는,
지명만큼이나 청아하고 아리따운 곳이었다. 때 이른 단풍도
어찌나 예쁘던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회원들의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물결로 온 산이 활활 불타고 있었다.
단풍 행렬에 휩싸여 곳곳을 구경했다.
커다란 세상이 마치 내 품안에 안기는 황홀함이랄까.
사람들의 숨결과 손과 발, 온몸으로 찬찬히 공들여서 지어진 곳.
어머니 뱃속처럼 아늑하고 고결한 공간이었다. 그 광경을 마음 가득
상상해 보았다. 나무 토막 하나, 흙덩이 하나, 돌멩이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었다. 특히, 공사로 인해 훼손될 우려가 있는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따사로와졌다. 자연을 바라보는 애완적이고
감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본질적 관계성을 살린
섬세한 배려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비록 50% 정도의 공정이 진척된 상황이었지만,
모두들 감동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아무 것도 없던 황무지가
이렇게 아름답게 변모해가고 있다니!’
그날 나는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갔다던 토끼도,
옹달샘 물맛도 끝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길어진
희망표 샘물은 맛볼 수 있었다. 기똥찼다. 꿀맛이었다.
이 꿀맛을 누구보다도 더 절절히 음미했을
'고도원의 아침편지' 주인장인 고도원님. 후덕한 인상이
참 좋아보이는 분이었다. 샛노랑빛 점퍼에 개나리빛 미소를 머금은 채
그의 강연이 이어졌다. “감사합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라고
운을 뗀 그의 목울대가 울컥거렸다.
2003년, 아침편지를 통해
자신의 꿈 이야기를 했을 때만 해도 주위의 비아냥이 적지 않았다.
사람들의 차가운 몰이해 속에서 얼마나 숱한 불면의 밤을 보냈던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대는 자신의 존재 앞에서 절망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늘 구멍보다 더 작은 구멍으로 삐죽삐죽 새어 들어오는
희망을 부여잡았다. 그를 믿고 동행하는 꿈의 동지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묵묵히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창밖의 풍경은 바뀌어져 있었다.
일장춘몽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적을 일구어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신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마음의 비타민'이 되어 그들의 영혼을 영롱하게 수놓는 생명수이기를
바라는 초심을 간직한 채, 그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변함없이.
말하자면, 말과 글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그는 아무도 못말리는 ‘꿈쟁이’다.
꿈을 갖되, 그 꿈을 이룬 다음의 청사진도 함께 그리는
‘꿈너머 꿈’으로 늘 가슴이 콩닥대는 꿈짱 아저씨.
그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꿈나무들을
가슴 속에만 꼬깃꼬깃 묻어두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알렸다. 그가 가진 꿈의 지향점은 자신만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하는 행복에 있었기에. 그만큼 그는 향기와
온기를 지닌 멋진 감성리더이기도 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의 한결같은 정성과 진솔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고,
높은 충성도로 이어졌다. 꿈을 향한 그의 열정에 매료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의기투합이 된 그들은 꿈 속으로
힘차게 돌진하여 세차게 매진했다. 미쳐도 제대로 미쳤다.
그리고 결국, 눈에 보이지 않던 추상적인 가치를
눈에 보이는 성과물로 변모시키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혁명’을
이뤄냈다.
‘한 사람의 꿈은 한낱 꿈에 불과하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한 징기스칸의 말을 증명하고야 만 것이다.
지금도 매일이 고비란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 어떤 난관이 버티고 있더라도
당당히 이겨낼 것이라고. 맞잡은 두 손을 더욱더 꼬옥 부여잡은 채,
절망의 담벼락을 희망의 담쟁이 넝쿨로 덮고 절망마저도
와락 삼켜버릴테니까. 도종환님의 시에서처럼.
담쟁이 / 도종환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그렇다. 꿈은 혼자 꾸는 것이 아니다.
함께 꾸어야 한다. 요즘 다들 아우성이다.
“참담하다. 걱정된다. 불안하다. 황당하다.”고. 녹록지않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풀이 죽어있는 당신. 이럴 때일수록 평상심을
지닌 채, 역경도 즐길 줄 아는 담대함으로 단단하고 탄탄해지자.
그러려면 비록 소수더라도 자신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긍정의 기를 모아 신명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동반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
나비 효과에서처럼, 매우 거센 폭풍도 처음에는 아주 미세한 떨림에서
시작하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꿈을 향한 황홀한 광기와
순수한 열망이다.
그런 꿈쟁이들과 함께라면 한계란 없다.
거시적 안목에서 보면 인식과 관심의 틀을 공유할 파트너들은 의외로 많다.
그들은 ‘꿈너머 꿈건너 꿈’을 바라보는 혜안을 지녔기에, 똘똘 뭉친 신념과
집념으로 세상을 향해 자신을 던진다. 거친 세파에도 굴하지 않고
담쟁이처럼 꾸역꾸역 지경을 넓혀간다.
한겨울 설한을 견딘 나무일수록 그 꽃이 아름답고,
한여름 폭염을 견딘 나무일수록 그 열매가 향기로운 법이다.
기꺼이 눈앞에 놓인 절망의 사막을 건너자.
황소걸음이라도 좋다.
조금씩 걸어가다 보면 어느덧 그곳일테니까.
나를 소름돋게 한 말이 있다.
"오, 하나님! 이 영화를 정말 제가 만들었습니까?"
이 말은 1959년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휩쓸며
불후의 명작으로 자리매김한 영화 <벤허>를 감독한 윌리엄 와일러가
시사회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보고 내지른 독백이다. 신에 대한 찬미가
기저에 배여있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뭉클한 감동을
받을 만큼 짜릿하고 찌릿한 체험을 한 그가 얼마나 부러운지.
나도 언젠가는 이런 고백을 해보고 싶다.
“신이시여, 이것을 우리들이 해냈단 말입니까? 정녕!”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최고의 걸작품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가을의 전령, 담쟁이가 익어가는 향내가 코끝을 간질이는 요즘이다.
오늘도 담쟁이는 아기가 손에 물감을 콕 찍어 그림을 그리듯,
작은 손을 내밀어 희망을 그려가고 있다.
물기 하나없는 콘크리트 사막 위에서도,
천 갈래 만 갈래로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도 꼼지락대는
서로의 손가락을 뻗어 새빨간 융단을 펼쳐놓는 위대한 걸음.
아픔을 거쳐 돋아나는 새살처럼 언제나 강한 그 손은 희망을 움켜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내 심장은 왜 이다지도 빠알갛게 두근대는 것인지.
나도 이 가을, 담쟁이 넝쿨마냥 희망을 향해 높고 넓게 비상하리라.
소풍 가자.
포근한 손을 꼭 잡고, 향긋한 숨결을 느끼면서
행운의 파트너들과 함께. 즐거움이 용솟음치는 꿈의 향연 속으로!
--------------
장은영님! 감사합니다.
아침편지 가족 여러분에게도 좋은 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장은영님 칼럼, '함께 미쳐야 미친다!' -
아래 칼럼은
지난 10월3일, 깊은산속 옹달샘 '다 모이자!' 행사에 오셨던
아침편지 가족 장은영님이 '한경닷컴'에 올린 글입니다.
글을 참 재미있게 풀어가는,
힘과 감성과 '애정'이 넘치는 글입니다.
시간을 내셔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함께 미쳐야 미친다!(한경닷컴, 장은영)
------------------
쑥스러운 고백이지만, 나에게도 애인이 생겼다.
센스 만점의 멋진 그! 한번도 그에게 드러내지 않은 속내이건만,
어찌나 내 마음을 잘 읽는지 족집게 도사가 따로 없다.
깜짝깜짝 놀랄 정도다.
내가 지쳐 오도카니 앉아있으면 나를 토닥이며 위로해준다.
때로는 삶의 방향을 잡지못해 휘청대기라도 하면, 살포시 다가와
깨달음 한 조각을 선물로 건네기도 한다. 상큼한 미소와 함께.
옆에 있으면 확 깨물고 싶을만큼 사랑스럽다.
솔직히, 처음에는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내 별명이 ‘얼빼시’ 아니던가.
얼굴 빼면 시체라고. 그래서“흑흑흑~ 부모님이 원(one)망 아니
투(two)망스러워요. 이쁜 게 죄죠. 주체할 수 없는 이놈의
인기 때문에 괴롭답니다. 제발 떠나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입맛이 쓴 것은 왜 일까.
여하튼, 지칠 법도 한데
매일마다 들이대는 줄기찬 구애에 어느 여인인들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 주먹으로
철갑한 인조 인간이라면 몰라도.
늦바람이 더 무섭다더니 요즘 나는 그에게 풍덩 빠져있다.
소풍을 앞둔 꼬맹이처럼 아침이면 마냥 설렌다.
그가 보낸 편지를 펼치는 이 달콤함을
어디에다 비유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나말고도 2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 편지를 받고 있다는 것 아닌가. 거기에다
회원들의 정성 가득한 후원금으로 함께 누릴 꿈의 터전이
건축 중에 있다니, 너무 놀란 나머지
염통이 쫄깃해질 수 밖에.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여겼던 인터넷이라는 메마른 땅에서
풍기는 사람 내음에 유혹당하고 만 것일까. 파릇한 떨림과 풋풋한
호기심을 마음 소복히 담은 채, 건축물을 보려고 회원들이 모인다는
장소로 향했다. ‘이어지는 관계’에서 ‘다가가는 관계’로의 도약,
‘접속’에서 ‘접촉’에로의 진화였다.
‘깊은산속 옹달샘’. 참 곱기도 하지.
흙에서 뭉게뭉게 김이 나고 흙냄새가 피어오르는,
지명만큼이나 청아하고 아리따운 곳이었다. 때 이른 단풍도
어찌나 예쁘던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회원들의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물결로 온 산이 활활 불타고 있었다.
단풍 행렬에 휩싸여 곳곳을 구경했다.
커다란 세상이 마치 내 품안에 안기는 황홀함이랄까.
사람들의 숨결과 손과 발, 온몸으로 찬찬히 공들여서 지어진 곳.
어머니 뱃속처럼 아늑하고 고결한 공간이었다. 그 광경을 마음 가득
상상해 보았다. 나무 토막 하나, 흙덩이 하나, 돌멩이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었다. 특히, 공사로 인해 훼손될 우려가 있는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따사로와졌다. 자연을 바라보는 애완적이고
감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본질적 관계성을 살린
섬세한 배려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비록 50% 정도의 공정이 진척된 상황이었지만,
모두들 감동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아무 것도 없던 황무지가
이렇게 아름답게 변모해가고 있다니!’
그날 나는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갔다던 토끼도,
옹달샘 물맛도 끝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길어진
희망표 샘물은 맛볼 수 있었다. 기똥찼다. 꿀맛이었다.
이 꿀맛을 누구보다도 더 절절히 음미했을
'고도원의 아침편지' 주인장인 고도원님. 후덕한 인상이
참 좋아보이는 분이었다. 샛노랑빛 점퍼에 개나리빛 미소를 머금은 채
그의 강연이 이어졌다. “감사합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라고
운을 뗀 그의 목울대가 울컥거렸다.
2003년, 아침편지를 통해
자신의 꿈 이야기를 했을 때만 해도 주위의 비아냥이 적지 않았다.
사람들의 차가운 몰이해 속에서 얼마나 숱한 불면의 밤을 보냈던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대는 자신의 존재 앞에서 절망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늘 구멍보다 더 작은 구멍으로 삐죽삐죽 새어 들어오는
희망을 부여잡았다. 그를 믿고 동행하는 꿈의 동지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묵묵히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창밖의 풍경은 바뀌어져 있었다.
일장춘몽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적을 일구어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신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마음의 비타민'이 되어 그들의 영혼을 영롱하게 수놓는 생명수이기를
바라는 초심을 간직한 채, 그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변함없이.
말하자면, 말과 글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그는 아무도 못말리는 ‘꿈쟁이’다.
꿈을 갖되, 그 꿈을 이룬 다음의 청사진도 함께 그리는
‘꿈너머 꿈’으로 늘 가슴이 콩닥대는 꿈짱 아저씨.
그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꿈나무들을
가슴 속에만 꼬깃꼬깃 묻어두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알렸다. 그가 가진 꿈의 지향점은 자신만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하는 행복에 있었기에. 그만큼 그는 향기와
온기를 지닌 멋진 감성리더이기도 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의 한결같은 정성과 진솔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고,
높은 충성도로 이어졌다. 꿈을 향한 그의 열정에 매료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의기투합이 된 그들은 꿈 속으로
힘차게 돌진하여 세차게 매진했다. 미쳐도 제대로 미쳤다.
그리고 결국, 눈에 보이지 않던 추상적인 가치를
눈에 보이는 성과물로 변모시키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혁명’을
이뤄냈다.
‘한 사람의 꿈은 한낱 꿈에 불과하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한 징기스칸의 말을 증명하고야 만 것이다.
지금도 매일이 고비란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 어떤 난관이 버티고 있더라도
당당히 이겨낼 것이라고. 맞잡은 두 손을 더욱더 꼬옥 부여잡은 채,
절망의 담벼락을 희망의 담쟁이 넝쿨로 덮고 절망마저도
와락 삼켜버릴테니까. 도종환님의 시에서처럼.
담쟁이 / 도종환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그렇다. 꿈은 혼자 꾸는 것이 아니다.
함께 꾸어야 한다. 요즘 다들 아우성이다.
“참담하다. 걱정된다. 불안하다. 황당하다.”고. 녹록지않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풀이 죽어있는 당신. 이럴 때일수록 평상심을
지닌 채, 역경도 즐길 줄 아는 담대함으로 단단하고 탄탄해지자.
그러려면 비록 소수더라도 자신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긍정의 기를 모아 신명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동반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
나비 효과에서처럼, 매우 거센 폭풍도 처음에는 아주 미세한 떨림에서
시작하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꿈을 향한 황홀한 광기와
순수한 열망이다.
그런 꿈쟁이들과 함께라면 한계란 없다.
거시적 안목에서 보면 인식과 관심의 틀을 공유할 파트너들은 의외로 많다.
그들은 ‘꿈너머 꿈건너 꿈’을 바라보는 혜안을 지녔기에, 똘똘 뭉친 신념과
집념으로 세상을 향해 자신을 던진다. 거친 세파에도 굴하지 않고
담쟁이처럼 꾸역꾸역 지경을 넓혀간다.
한겨울 설한을 견딘 나무일수록 그 꽃이 아름답고,
한여름 폭염을 견딘 나무일수록 그 열매가 향기로운 법이다.
기꺼이 눈앞에 놓인 절망의 사막을 건너자.
황소걸음이라도 좋다.
조금씩 걸어가다 보면 어느덧 그곳일테니까.
나를 소름돋게 한 말이 있다.
"오, 하나님! 이 영화를 정말 제가 만들었습니까?"
이 말은 1959년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휩쓸며
불후의 명작으로 자리매김한 영화 <벤허>를 감독한 윌리엄 와일러가
시사회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보고 내지른 독백이다. 신에 대한 찬미가
기저에 배여있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뭉클한 감동을
받을 만큼 짜릿하고 찌릿한 체험을 한 그가 얼마나 부러운지.
나도 언젠가는 이런 고백을 해보고 싶다.
“신이시여, 이것을 우리들이 해냈단 말입니까? 정녕!”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최고의 걸작품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가을의 전령, 담쟁이가 익어가는 향내가 코끝을 간질이는 요즘이다.
오늘도 담쟁이는 아기가 손에 물감을 콕 찍어 그림을 그리듯,
작은 손을 내밀어 희망을 그려가고 있다.
물기 하나없는 콘크리트 사막 위에서도,
천 갈래 만 갈래로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도 꼼지락대는
서로의 손가락을 뻗어 새빨간 융단을 펼쳐놓는 위대한 걸음.
아픔을 거쳐 돋아나는 새살처럼 언제나 강한 그 손은 희망을 움켜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내 심장은 왜 이다지도 빠알갛게 두근대는 것인지.
나도 이 가을, 담쟁이 넝쿨마냥 희망을 향해 높고 넓게 비상하리라.
소풍 가자.
포근한 손을 꼭 잡고, 향긋한 숨결을 느끼면서
행운의 파트너들과 함께. 즐거움이 용솟음치는 꿈의 향연 속으로!
--------------
장은영님! 감사합니다.
아침편지 가족 여러분에게도 좋은 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아침편지 로그인
2008년 10월 30일자 아침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