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17일 오늘의 아침편지 출력하기 글자확대
눈을 뜨고 자는 사람들 보통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잠을 잔다.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 잘 잔다.
그런데 정말 깊은 잠을 자는 사람은
밝은 곳에서 눈을 뜨고 자는 사람이다.
행군 중에 잠을 자는 젊은 병사처럼.


- 방우달의 시집《아름다운 바보》에 실린 시 <깊은 잠>(전문)에서 -


* 눈을 뜨고 잠을 자는 젊은 병사들이 있기 때문에
그밖의 사람들은 편안히 눈을 감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비 피해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밖의 사람들이 더 크게 눈을 뜨고 있어야
그들이 다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습니다.

- 오늘은 제헌절,
비 피해는 없으셨는지요.
아무쪼록 큰 피해 없는 휴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 '막장에서'(신영길의 길따라 글따라) -

아래 글은 신영길님이 지난 12일 '신영길의 길따라 글따라'에 올린
'막장에서'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휴일을 보내시면서
한번씩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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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에서>

막장이라 했다.
지하로 900 미터쯤 내려가 거기서 다시 십여 리를 가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갱도의 막다른 곳.
30도가 넘는 더위와 높은 습도 그리고 매캐한 가스로 숨이 막혀온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공포와 어둠, 그곳에 내가 서 있다.

무엇인가에 이끌려가는 듯한 때가 있다.
나는 아무 의지도 이유도 없는데 문득 어느 곳에 가고 싶어지는,
간절하게 떠나고 싶은.......

엊그제 일요일 내가 그랬다.
아침 이른 시간에 눈을 떴는데 공연히 마음이 어지럽고
어디에 바람이라도 든 것처럼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역마살이 들었다고 그러더니 이런 건가.

청량리역.
정동진은 너무 멀고, 단양은 좀 가까운 것 같고, 그냥 태백으로 정했다.
기차에 오르고 나니 그제야 마음속의 바람이 잦아들었다.
서울을 벗어나 푸른 들판과 산을 통과하자 금방 잠이 쏟아졌다.
썰물과 밀물이 일정하게 오가듯 숨결이 평안했다.

여행은 내 안의 풍경을 찾으러 떠나는 길이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기도 하고
보기는 했지만 깨닫지 못했던 것을 뚜렷이 해독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다가 다시 벗어나고, 잠들었다가는 다시 깨어나고
그러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다 보니 금세 태백에 닿았다.

태풍이 올라온다더니 날씨가 끄물끄물하다.
비가 오는지 산색이 어디는 젖어 있고 또 어디는 말짱하고
누구는 우산을 쓰고, 누구는 그냥 걷고 있다.

태백산 입구까지 갔다.
계곡에 물이 불어 가득 흐르고 안개가 산에 걸렸다.
비 오는 날 특유의 산 내음이 좋다. 산에 들어선지 두어 시간 지났을까.
빗줄기가 커지는 것 같더니 머리며 어깨가 자꾸 젖어온다.
천제단까지는 가볼 생각이었으나 그냥 내려와야 했다.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막걸리를 마셨다.
뭐 재미나는 일 없을까.
생각을 톺아보고 눈을 두리번거려 보았으나
그 시간에 갈 곳이라고는 석탄박물관 밖에 없다.
날씨마저 궂은 탓에 관광객은 나 혼자뿐이다.

지구의 역사, 석탄의 생성과 채굴, 탄광생활 등이
여덟 개의 전시관을 통해 설명되고 마지막으로 체험관이 있었다.
가상과 현실을 적당히 교잡하고 음향과 조명으로 효과를 덧입힌
시뮬레이션 막장체험을 하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땅속으로 내려간다.
컴컴한 어둠 속 갱도를 걸어 막장에 이른다.
수억 년 전 숲과 짐승이 땅에 묻히고, 이제 석탄으로 되살아나
현생 인류와 만나는 현장. 무서운 느낌이 엄습해온다.

땀과 석탄가루로 범벅이 된 얼굴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여기까지 흘러들어와
어둠을 파 빛을 캐내는 사람들.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을 걸고 일한다.
이른 아침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나와 수백 미터 깊이 지하갱도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가는 절박한 삶을 생각하니 가슴이 절절하다.
한 사람의 실수로 순식간에 모두가 묻힐 수 있으니
너와 나는 없고 오직 우리뿐이라는 사람들,
진지한 삶 앞에서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돌이켜 보면 내 삶에도 막장이 있었다.
앞도 뒤도 막혀 있고 주위는 어두웠다.
어디에도 피할 곳은 없었고, 누구도 진정으로 도움이 되어 주지 못했다.
불길하고 음침한 소리만이 울려올 뿐 희망의 소리는 없었다.
이 어둠의 끝은 어디고 빛은 언제 올 것인가.
고통으로 울부짖었고 절망 속에서 신음했다.

지난 고비들이 눈앞에 펼쳐졌다가는 사라지고 또 다시 나타나고.......
참 신기한 일이다.
아무 희망도 없던 그때, 그곳에서
나는 어떻게 탈출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가슴이 열리는 것인지 뜨거워지는 것인지,
땀인지 다른 무엇인지가 얼굴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다.

막장에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다는 뜻이다.
앞으로는 희망만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너무 엄살 부리지 말라.
네 속이 탄다고 그랬더냐. 진정 탔더냐.
그렇다면 이젠 불꽃으로 타오를 수 있지 않겠느냐.
다른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달구어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
석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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